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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실패해도 용인하는 R&D 예산 10배로 늘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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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부가 ‘실패해도 용인하는’ 고난도 연구개발(R&D) 과제에 대한 예산 비중을 5년 안에 지금의 10배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100억원 이상의 대형 과제도 3배 수준으로 늘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안덕근 장관 주재로 삼성전자 서울 R&D 센터에서 열린 ‘R&D 혁신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산업·에너지 R&D 투자 전략과 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관행적이며 보조금 성격을 보이는 기존 지원 대신,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R&D 지원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위험 차세대 기술 지원 확대 ▶시장 성과 극대화 ▶수요자 중심 프로세스 ▶인재 양성 등 ‘4대 혁신 방향’을 설정했다.

우선 실패해도 불이익이 없는 고난도·실패용 프로젝트에 대한 신규과제 예산 대비 비중을 2023년 1%에서 2028년 10% 수준(약 1200억원)까지 끌어올린다. 아울러 10대 게임체인저 기술 개발을 위해 올해 1조원 규모의 ‘알키미스트 시즌2’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추진한다. 구체적인 기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와이파워 시스템 등이 거론된다.

2022년 시작된 알키미스트는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고 실패 확률이 높지만, 성공하면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황금을 만들기에는 실패했지만, 현대 화학의 근간을 다진 연금술사(Alchemist)에서 이름을 따 왔다. 기존엔 정량적으로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했다면, 이러한 과제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두지 않고 10년 뒤를 내다보고 지원하는 것이다.

시장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형과제 중심으로 사업체계를 개편한다. 전체 사업 수는 지난해 280개에서 올해 230개로 줄었지만, 100억원 이상 대형과제는 오히려 57개에서 160개로 대폭 확대했다. “소규모로 파편화된 사업을 줄이고, 미션(과제) 중심으로 유사 목적의 사업들을 통합해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 부담도 줄여준다. 대기업은 연구비의 기업 부담분을 60%까지 현금으로 내야 했지만, 이 비중을 15%로 45%포인트 낮춘다. 이렇게 되면 기업으로선 인력·설비 등 현물 투입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인력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11% 확대해 석박사 인재를 집중 육성하고, 첨단산업 특성화 대학원도 8개 늘리기로 했다.

이번 투자 방향은 R&D 예산이 대폭 삭감돼 불만이 커진 연구 현장 달래기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5일 열린 과학기술계 민생토론회에서 “내년도 예산을 만들 때는 R&D 예산을 대폭 증액을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초 정부는 ‘R&D 카르텔 해체’를 앞세워 올해 R&D 예산안을 전년 대비 16.6%(5조2000억원)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거센 반발이 나오면서 최종적으로 정부안보다 6000억원 늘어난 26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그럼에도 지난해보다 14.7% 줄었고, 산업·에너지 R&D는 10.5%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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