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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금’에는 여야 한뜻…출판기념회 막을 법 안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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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자금 수금회’로 변질된 지 오래지만 자정 작용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엔 출판기념회 양성화를 위한 법안이라도 발의됐지만 21대 국회에선 아예 그러한 시도조차 사라졌다.

중앙일보가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출판기념회 규제를 위한 법안 발의는 21대 국회에서 단 한 건도 없었다.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는 각각 510건, 73건에 달했지만, 음성적인 정치자금 통로를 막는 출판기념회 관련 법안에는 여야 모두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것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인이 받을 수 있는 후원금에 대해 세세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정작 후원금을 ‘후원회에 기부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그 밖의 물건’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정치인이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팔아 얻는 돈을 저술 활동을 통해 버는 수입으로 간주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자금이 아니니 얼마를 벌었는지 알릴 공개 의무도 없다. 출판기념회에 관한 유일한 규제는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출판기념회를 열지 못한다’는 공직선거법 103조 5항 규정뿐이다.

그래도 과거엔 자정 시도가 있었다. 2014년 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던 신학용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이 법안 발의 대가로 출판기념회에서 유관 단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게 발단이었다.

 관련 의혹이 이른바 ‘입법 로비’ 사건으로 번지면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보수혁신위원회는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직 선거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출판기념회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새누리당 의원 153명 명의로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법안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같은 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책을 정가에만 판매하도록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역시나 여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대 국회 때는 2018년 8월 정종섭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출판기념회의 의미를 넘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출판기념회 사전 신고와 판매 제한, 수입·지출 내역 보고 등의 규제를 강화하는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거쳐 행정안전위원회로 법안이 넘어갔지만 소위에서 계류 상태로 있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입법 공백이 이어진 동안 잡음은 계속됐다. 노영민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5년 10월 시집 출판기념회를 연 뒤 같은 해 12월 출판사 카드 단말기를 의원실에 두고 피감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팔아 물의를 빚었다. 결국 노 전 의원은 이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뇌물·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 압수수색 당시 자택에서 나온 현금 3억원에 대해 “출판기념회 때 남은 돈과 아버님 조의금”이라고 해명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뻔히 개선 방안이 있는데 매번 국회 논의가 중단되는 걸 보면 기득권을 가진 국회의원의 전략적 공생만 강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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