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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300승 ‘우리’의 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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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여자프로농구 최초로 300승을 앞둔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농구공 등으로 만든 ‘300’ 숫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여자프로농구 최초로 300승을 앞둔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농구공 등으로 만든 ‘300’ 숫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렇게 많은 승수를 쌓은 줄 미처 몰랐네요.”

여자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300승을 눈앞에 둔 우리은행 위성우(53) 감독은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위 감독은 16일 현재 298승 82패(승률 78.6%)를 기록 중이다. 우리은행은 올 시즌 14승 3패로 2023~24시즌 정규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이달 중으로 300승 대기록 달성이 유력하다.

최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훈련장에서 위성우 감독을 만났다. 위 감독은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300승 고지에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 이후엔 바쁜 경기 일정과 치열한 순위 경쟁 때문에 잊고 살았다. 다음 경기에서 이길 생각만 하지, 지나간 승리는 되돌아보진 않는다”고 밝혔다.

위성우 감독의 통산 승률은 80%에 가깝다. 김경록 기자

위성우 감독의 통산 승률은 80%에 가깝다. 김경록 기자

위 감독의 300승은 ‘위대한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자프로농구 최다승 부문 2위인 임달식 전 신한은행 감독(199승 61패·승률 76.5%)의 기록과는 무려 100승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승률이 80%에 가깝다.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위 감독처럼 꾸준하면서 높은 승률을 거둔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위 감독은 “승리는 코트에서 땀을 흘리며 뛴 선수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감독은 대표로 승수를 챙길 뿐이라서 ‘내가 해냈다’보단 ‘우리은행이 해냈다’는 표현이 맞다”고 말했다.

올 시즌 올스타전 이벤트에 나선 위성우 감독(오른쪽). 뉴스1

올 시즌 올스타전 이벤트에 나선 위성우 감독(오른쪽). 뉴스1

위 감독은 현역 시절 6시즌 통산 평균 3.4점에 그친 무명 선수였다. 선수로서 억대 연봉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래도 훈련은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위 감독은 “농구 명문대 출신도, 스타도 아니었다. 그래도 훈련할 때는 실전처럼 달려들었다. 벤치에선 한눈팔지 않고 경기 흐름을 따라가고 예측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은퇴 이듬해인 2005년부터 여자농구 신한은행에서 7년간 코치로 일했다.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6차례 차지했다. 충분한 경험을 쌓은 그는 2012~13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 감독을 맡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앞선 4시즌 연속 한 자릿수 승리에 그치며 최하위에 머물렀던 ‘만년 꼴찌팀’이었다.

우리은행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뉴스1

우리은행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뉴스1

위 감독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올빼미 지옥훈련’을 실시했다. 선수들이 지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불호령을 내렸다. 덕분에 위 감독에겐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위 감독은 “나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지만, 지도자로선 ‘별 볼 일 있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땐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패배 의식을 떨쳐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연히 300승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고 말했다.

위 감독 체제에서 우리은행은 강팀으로 변모했다. 부임 첫 시즌부터 6년 연속 통합 챔피언을 차지하며 ‘우리 왕조’를 세웠다. 위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데뷔전(KDB생명전)이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경기 끝날 때까지 선수 교체를 한 번도 못 했다. 완전 초보 감독이었다”며 빙긋이 웃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함께 동고동락하는 전주원 코치, 임영희 코치, 박혜진이 고맙다”고 했다.

12년차 사령탑인 위성우 감독. 우상조 기자

12년차 사령탑인 위성우 감독. 우상조 기자

위 감독은 올해로 12시즌째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다. 여자프로농구 최장수 감독이다. 롱런의 비결은 카멜레온 같은 ‘맞춤식 리더십’이다. 그는 무작정 소리 지르는 ‘호랑이’ 대신 선수들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즐기는 노련한 ‘여우’로 진화했다.

위 감독은 ‘선수 보는 눈’과 ‘팀 구성 능력’도 탁월하다. 김정은·김단비 등 다른 팀에서 우승하지 못한 에이스급 선수를 데려와 팀에 녹아들게 했다. 이들은 어김없이 우리은행의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다. 위 감독은 “‘원팀’으로 뭉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 선수들과 이적생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강조했다”고 했다.

통합 우승 2연패가 목표인 위성우 감독. 우상조 기자

통합 우승 2연패가 목표인 위성우 감독. 우상조 기자

위 감독의 도전은 계속된다.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은 올 시즌 통합 챔피언 2연패에 도전한다. 그러려면 1위 KB스타즈(16승 2패)를 넘어야 한다. 위 감독은 “스포츠는 1등만 살아남는다. 아름다운 2등은 소용없다”며 “부상자가 많아서 (우승은) 쉽지 않다. 그래서 챔피언보다는 도전자 정신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 내 농구 인생처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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