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가 볼거리네…‘속 보이는’ 박물관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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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수장고를 도입하는 박물관·미술관이 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타워형 수장고.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 수장고를 도입하는 박물관·미술관이 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타워형 수장고.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경기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인접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지난 12일 들어서자마자 확 트인 로비에 2개층 높이(약 15m)의 타워형 진열대 3개가 웅장하게 다가왔다. 박물관의 ‘열린 수장고’다. 사방이 유리벽인 이 공간에선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박물관의 유물 분류 체계대로 둘러볼 수 있다. 격납형 진열대 한쪽 칸에 요강이 대여섯개, 다른 칸엔 다듬잇돌이 네댓 개 모여 있는 식이다. 또 다른 ‘보이는 수장고’는 들어가 볼 순 없어도 유리벽 너머 유물 서랍을 훤히 볼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특별전도 진행한다. ‘수장고 산책: 아무튼, 동물!’ 전시(2월 25일까지)는 복을 상징하는 박쥐, 화목·행복을 상징하는 나비, 입신양명·출세를 상징하는 잉어 등 동물 문양 소장품에 초점을 둔다. 그렇다고 별도로 내오는 건 아니다. 평소 진열된 유물에 동물 문양이 있으면 그쪽이 더 잘 보이게 돌려놓을 뿐이다. 옹기와 백자를 혼합한 듯한 ‘해주항아리’는 민화풍으로 그려진 여러 문양 가운데 물고기(한 번에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상징)가 잘 보이게 재배치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타워형 수장고에선 수납된 해주항아리 그대로 특별전 중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타워형 수장고에선 수납된 해주항아리 그대로 특별전 중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총 3개 층(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이뤄진 파주관은 서울 경복궁 내에 위치한 민속박물관 본관의 수장고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어졌다. 매년 실물 유물만 약 7700점씩 늘어나고 디지털 아카이브도 폭발적 증가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 널찍한 땅에 짓되 이왕이면 관람객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개방형 수장고로 지난 2021년 7월 공식 개관했다.

일반 전시관과 차이점은 유물 관리 프로그램에 각각의 위치값이 입력돼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단 점이다. 구문회 학예연구관은 “건물 설계 때부터 어떤 유물을 타워형 수장고에 놓을지 꼼꼼히 시뮬레이션했다”면서 “상설 전시가 가능한 도기·토기·석기 위주로 골랐고 어우러지는 모양새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숭례문 화재 잔해로 2층 문루를 재현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연합뉴스]

숭례문 화재 잔해로 2층 문루를 재현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연합뉴스]

타워형 수장고에 놓인 유물만 6000여점이다. 총 16개 수장고 가운데 열린 수장고(7개)와 보이는 수장고(3개)를 뺀 나머지 6개는 비공개형으로 지류(종이)나 섬유 유물, 각종 아카이브 자료(사진·영상 등)를 보관한다. 민속 유물과 아카이브까지 합치면 105만4809점의 수장품을 자랑한다. 건물 내 카페 같은 편의시설도 없는데 지난해 8만3000여명이 찾았고 올해 1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파주관 바로 옆엔 2017년 문을 연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이하 센터)가 있다. 문화재청 산하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이 건축 문화재의 각종 부재를 수집·보존·연구하러 설립했다. 파주관과 센터가 위치한 ‘박물관 문화 클러스터’ 부지엔 무대예술지원센터 등 개방형 수장고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천연기념물센터의 화석·지질 표본 개방형 수장고. [사진 천연기념물센터]

천연기념물센터의 화석·지질 표본 개방형 수장고. [사진 천연기념물센터]

해외에서도 수장형 전시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앨버트(V&A) 뮤지엄은 2010년 도자실 일부를 ‘스터디 갤러리’로 개방하면서 노출 유물이 3000점에서 2만6000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브루클린박물관도 2005년 개편을 통해 일반 전시실(350여점)보다 개방형 수장고(2500점)에 훨씬 많은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수장형 전시가 일종의 유행으로 번지면서 ‘수장고부터 더 크게 짓고 보자’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학 연구자인 이화여대 오영찬 교수는 “수장형 전시를 해야 할 정도로 좋은 컬렉션을 갖춘 박물관·미술관은 국내에서 손꼽을 정도”라면서 “전시의 양이 아니라 질을 높이는 경쟁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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