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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2병 먹인 뒤 "수영해"…단순 익사 묻힐 뻔한 그날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술집에서 피해자가 A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 창원해경

술집에서 피해자가 A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 창원해경

단순 익사로 종결될 뻔한 사건이 알고보니 치밀한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범죄였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창원해양경찰서는 거제 옥포항 수변공원 앞 해상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과 관련해 40대 남성 A씨를 과실치사, 중감금치상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17일 밝혔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11일 경남 거제 옥포항 수변공원에서 발생했다. 50대 남성 B씨가 바다에 빠져 숨진 것이다.

당초 이 사건은 단순 변사 사건으로 종결될 뻔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를 비롯한 숨진 남성의 일행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해 수사에 나서면서 이 사건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가스라이팅 범죄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창원해경에 따르면 사망한 B씨는 매달 국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A씨는 지난 2018년 알게 된 B씨에게 자신이 과거에 조직폭력배로 활동했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조직원을 동원해 보복하겠다며 폭행을 가하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 A씨는B씨와 같이 기초생활수급자였던C씨(50대 남성)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지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B씨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10월 10일에도 거제 옥포동 소재 한 식당 등에서 B씨와 C씨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뒤 잠을 재우지 않았다. 사망 당일까지 피해자들이 마신 술은 소주 22병에 달했다.

피해자가 옥포수변공원에서 바다 들어가는 모습. 사진 창원해경

피해자가 옥포수변공원에서 바다 들어가는 모습. 사진 창원해경

다음날 A씨는옥포수변공원에서 피해자들에게 "둘이 수영해라"고 지시했다. B씨는 바로 옷을 벗고 난간을 넘어갔지만, C씨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그러자 A씨는 "안 들어가고 뭐하노"라며 입수를 재촉했다. 결국 바다에 먼저 들어간 B씨는 파도에 휩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경찰은 A씨의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등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황폐해진 B씨와 C씨가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되면서 빚어진 범죄라고 판단했다.

C씨는 연중 한 벌의 옷만 입고 매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을 지속해 왔으며, B씨 역시 차비가 없어 걸어 다녔고 식사를 못 해 체중이 18㎏가량 줄어드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A씨는 2021년부터 C씨에게 현금을 갈취하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4월 피해자들의 기초생활수급비 1300만원을 빼앗았다. 또 건강 문제로 일하기 힘든 피해자들에게 일용직 노동을 강요해 수입 230만원을 자신의 모친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A씨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고 일상을 보고 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피해자들에게 도보 약 5시간(약 17㎞) 거리를 걷게 하면서 도로명 표지판을 찍어 전송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피해자들을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 나가지 못하게 한 뒤 억지로 술을 먹이거나 서로 실신할 때까지 싸움을 붙이는 행동을 일삼았다.

창원해경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의지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벼랑 끝에 몰아넣은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라며 "피해자 보복범죄 방지와 조속한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해경은 지난해 12월 26일 A씨를 구속 송치했으며, 검찰은 지난 12일 A씨를 과실치사, 강요,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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