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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은미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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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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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은미 소설가

최은미 소설가

내게는 가로 1500㎜에 세로 600㎜ 크기인 책상이 하나 있다. 내가 가져본 중 가장 기다란 책상이다. 책상 한쪽에 머그컵과 핸드크림과 포스트잇과 읽고 있는 책을 늘어놓아도 노트북 자리가 꽤 넉넉히 확보되는 길이다. 앉아볼수록 내 작업 동선에는 1200도 1800도 아닌, 1500 길이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많이 아끼는 책상이지만 나는 이 책상에서 작업다운 작업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1500 책상을 갖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할 공간을 찾아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갔다. 스타벅스 H점으로, 투썸 M점으로. 내게 알맞은 책상을 집에 놓아둔 채 그 카페들의 작고 동그란 테이블 위에서 오랜 시간 글을 썼다.

어떤 전환점은 지난 후 알게 돼
변곡점 아는 채로 지나가기도
근육을 살피고 깨우고 나면
우주가 말려도 소설 쓰고 있을것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집에는 책상과 세로 폭이 똑같은 매트도 하나 있다. 책상보다는 조금 더 긴 1800×600 크기의 운동 매트다. 관에 눕는다면 딱 이 크기가 아닐까 싶을 만큼 매트는 내 한 몸을 눕히고 이완시키기에 알맞은 크기다. 더 넓은 매트도 써보았지만 600폭이 가장 좋았다. 그 매트와 단단한 폼롤러만 있으면 나는 능숙하게 내 후두하근과 견갑골과 중둔근의 피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매트 또한 거의 펼치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가, 무수한 이들의 땀에 절어 있는 헬스장 매트 위에서 내 근육엔 별다른 자극이 되지 않는 말랑한 폼롤러를 쓰다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다른 책상과 매트를 쓰고 다니는 중에도 나는 내가 내 600폭 책상과 600폭 매트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시기가 올 거라는 걸 어쩐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올 겨울이 될 거라는 걸 몰랐을 뿐.

어떤 전환점은 지나간 후에야 그게 전환점이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상황을 바꾸는 조건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밀려올 땐 내가 변곡점 위에 서 있다는 걸 너무나 아는 채로 그 시기를 지나기도 한다.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동시에 품은 채 현재를 처리해나가면서 나는 반나절 만에 지난 십년을 다시 겪기도 했고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것들을 미리 잃기도 했다. 그렇게 어떤 지점들을 지나는 동안 내가 하게 된 일은 내 책상과 매트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재정비한 일이 아니라 그것들을 집 밖으로 아예 빼내 오는 일, 그러니까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직방 앱부터 깐 일이었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동안엔 카페를 좋아했다. 그곳은 혼자 하는 작업 속에서 내가 최소한의 공적 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곳이었다. 나는 지난 십여년 동안 내가 어느 카페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소설을 썼는지를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공간들을 지겨워했던 꼭 그만큼의 애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카페 작업의 한계를 느끼고 1인용 공유오피스를 구했을 때도 카페 못지않게 그 공간을 좋아했다. 그곳은 만만하고 편안해서 무엇을 해도 부담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지나온 공간들이 그 나름의 이유로 다 좋았었기 때문에, 여러 건물과 골목을 돌며 십여평 남짓한 공간들을 보러 다니는 동안 나는 내가 작업실을 정말로 구하게 된다면 그곳을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알 수 있었다.

비용과 내 노동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시시때때로 회의에 빠질 거라는 것도 예상되었지만 중개사의 연락을 받고 낯선 공간의 문을 열 때마다 나는 내 책상과 매트가 놓일 자리를 최선을 다해 상상했다. 그곳을 마음껏 좋아하는 대신 집에 안 가고 싶어질 만큼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진 말자고도 생각했다. 일하다 그 책의 그 구절이 당장 보고싶어졌을 때 책장으로 걸어가 바로 그 책을 꺼내보자고도, 그 순간이 아니면 증폭되지 않을 단상들이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연결되며 곰팡이 포자처럼 공간을 채우는 것을 지켜보자고도 생각했다.

공간을 가늠해보던 몇 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나는 작업실을 구하고 안 구하고를 떠나 그 과정 자체가 내게 가져온 것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당분간 소설 쓰기를 쉬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쓰기를 위한 공간을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작업실을 구하게 된다면 내가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소설을 쓰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쓸 힘을 다시 채우기 위해 내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작업실은 알려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내게 600폭 매트가 있는 한 나는 기본적으로 나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육을 살피고 깨우고 나면 온 우주가 말려도 소설을 쓰고 있을 사람들, 그들이 소설가라는 것이다.

최은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