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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OTT 만난 K컬처…‘글로벌 주류’로 우뚝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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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일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에 오른 ‘성난 사람들(BEEF)’ 제작진과 출연진.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남녀 주연상과 감독상·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AFP=연합뉴스]

15일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에 오른 ‘성난 사람들(BEEF)’ 제작진과 출연진.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남녀 주연상과 감독상·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AFP=연합뉴스]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올해 미국 에미상의 주인공이 됐다.

‘성난 사람들’은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코크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8개 상을 휩쓸었다.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감독상과 작가상을,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중국·베트남계 배우 앨리 웡이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여기에 캐스팅상·의상상·편집상까지 거머쥐며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중 남녀 조연상과 음악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차지했다.

이미 지난 7일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3관왕을, 14일 제29회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던 만큼 에미상 역시 화답해 줄 것이란 예측들이 우세했다. 하지만 한인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성난 사람들’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상으로 꼽히는 에미상 8관왕을 차지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인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거나 글로벌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일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벌어졌던 일이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아이작 정의 ‘미나리’는 윤여정 배우에게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겼고, 애플TV+의 ‘파친코’ 역시 지난해 제28회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드라마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여전히 비주류란 인식이 강했던 데 비해 이번 ‘성난 사람들’의 에미상 8관왕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한인 디아스포라 콘텐트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닌 주류 무대로 들어왔다는 지표가 된다.

지난 몇 년간 각종 시상식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일관되게 이어져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나리’가 그랬고,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노매드랜드’가 그랬으며,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의 주인공이 되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그랬다. 이 밖에도 지난해 개봉해 국내에서 무려 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의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나, 올해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로 오르며 주목받았던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 등도 그 흐름 위에 있는 작품들이다. ‘성난 사람들’의 이번 성과가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성난 사람들’ 수상

‘성난 사람들’ 수상

이민자 문화를 담은 콘텐트들이 최근 급부상하게 된 건, 달라진 콘텐트 환경과 관련이 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애플+ 같은 글로벌 OTT들이 주류 콘텐트 소비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콘텐트 시장이 본격화됐다. 이 글로벌 콘텐트 시장에서 가장 중요해진 건 ‘문화 다양성’이다. 미국 할리우드 중심의 백인 영어 문화가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 다양한 문화를 얼마나 수용하고 있느냐가 전 세계 콘텐트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관건이 된 것이다. 여기서 두 개 이상의 문화를 공유한 ‘경계인’으로서의 이민자 문화가 주목받게 된다. ‘성난 사람들’에도 등장하지만 경계인의 문화에는 한국인 이민자로서의 독특한 한국적 문화·정서와 더불어 미국인으로서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삶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이민자의 고충·애환과 함께 빈부 격차 등 미국인이라면(혹은 전 세계인 누구라도) 모두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들어간다. 로컬의 차별성과 글로벌의 보편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성공할 수 있는 글로벌 OTT 환경 속에서 경계인의 삶을 다룬 이민자 콘텐트가 호응을 얻게 된 이유다.

그중에서도 한국계 제작자나 배우들의 콘텐트들이 주목받게 된 건, 최근 ‘기생충’부터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방탄소년단(BTS) 같은 K팝 열풍이 불러일으킨 한국 문화에 대한 보편화된 관심도 작용했다고 보인다. K콘텐트 열풍으로 전 세계인들이 K컬처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룬 작품들에 대한 문턱도 낮춰놓은 것이다.

‘성난 사람들’의 이번 성과가  K콘텐트에 시사하는 바 역시 분명해졌다. 글로벌에 과도하게 맞춰져 로컬 색깔이 희석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로컬 색깔을 자신감 있게 드러내는 작품이야말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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