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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봐" 담배 피우며 68세 주민에 욕설…MZ 몰린 '힙당동' 민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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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힙당동(힙+신당동)' 상권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종민(68)씨는 출근하자마자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쓰는 게 하루 일과다. 장서윤 기자

'힙당동(힙+신당동)' 상권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종민(68)씨는 출근하자마자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쓰는 게 하루 일과다. 장서윤 기자

“아침마다 이놈의 담배꽁초 때문에 아주 골머리가 아파 죽겠어.”

15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에서 10여 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종민(68)씨가 가게 앞을 쓸며 연신 말했다. 바닥 사이에 낀 담배꽁초가 안 빠져 집게로 파내자 꽁초 안 담뱃재가 터져 나왔다.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쓸어담는 일은 한두 해 전부터 최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아침 일과가 됐다. 최씨는 “며칠 전 젊은 애들 두 명이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길래 쳐다봤더니 상욕을 하더라”며 “그 뒤론 말도 못붙이고 그냥 아침에 일찍 나와 꽁초부터 치운다”고 했다.

15일 오전 '힙당동(힙+신당동)' 상권에서 곡식창고를 운영하는 이모(71)씨가 토사물을 치우고 있다. 장서윤 기자

15일 오전 '힙당동(힙+신당동)' 상권에서 곡식창고를 운영하는 이모(71)씨가 토사물을 치우고 있다. 장서윤 기자

같은 시각 부동산 앞에서 곡식 창고를 운영하는 이모(71)씨는 출근하자마자 가게 앞의 누군가의 토사물을 발견하곤 혀를 찼다. “수준이 낮아. 예의가 없어.” 이씨는 쓰레기봉투에 토사물을 옮겨 버렸지만 바닥에는 흔적이 남았다. 이씨는 결국 양동이로 물을 퍼와 뿌리며 걸레로 박박 닦아 냈다. 다 닦고 날 때쯤 골목길 건너편에서 또 다른 토사물을 발견했다. 이씨는 다시 체념한 듯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40여분 동안 건너편 토사물과 담배꽁초를 치웠다.

MZ명소 ‘힙당동’…주민들 ‘꽁초와의 전쟁’

지난 12일 밤 10시 '힙당동(힙+신당동)'의 한 술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흡연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지난 12일 밤 10시 '힙당동(힙+신당동)'의 한 술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흡연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한두 해전부터 술집과 카페·파티룸 등이 새로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힙당동(힙+신당동)’에 MZ세대가 몰리면서 주민들이 밤새 소음, 담배꽁초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 저녁에 찾은 신당역 1번 출구 뒤편에는 셔터가 내려진 주방 거리, 곡식 창고 사이로 화려한 장식의 술집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비트가 강한 음악 소리가 ‘쿵쿵’하며 가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술집 앞에는 가죽점퍼를 입거나 비니를 쓴, ‘힙’한 젊은 세대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거리에 있는 청년만 30명 가까이 돼 보였다.

12일 밤 10시 '힙당동(힙+신당동)' 상권 술집 인근에서 남성 2명이 문 닫은 부동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장서윤 기자

12일 밤 10시 '힙당동(힙+신당동)' 상권 술집 인근에서 남성 2명이 문 닫은 부동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장서윤 기자

좁은 골목은 금세 뿌연 담배 연기로 뒤덮였다. 문 닫은 곡식 창고나 부동산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도 있었다. 가게 앞에는 “민원다발지역입니다. 모두를 위해 금연해주세요!” “금연구역. 과태료 10만 원” 등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모습이었다. 거리 한편에 내걸린 ‘꽁초와의 전쟁’이란 문구의 중구청 현수막도 아랑곳없었다.

'힙당동(힙+신당동)' 일대 술집 앞에 금연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장서윤 기자

'힙당동(힙+신당동)' 일대 술집 앞에 금연을 부탁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장서윤 기자

'힙당동(힙+신당동)'으로 불리는 신당역 1번 출구 근처에 금연 안내문과 함께 '꽁초와의 전쟁'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장서윤 기자

'힙당동(힙+신당동)'으로 불리는 신당역 1번 출구 근처에 금연 안내문과 함께 '꽁초와의 전쟁'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장서윤 기자

12일 밤 '힙당동(힙+신당동)' 술집 옆 양곡창고에 '소변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장서윤 기자

12일 밤 '힙당동(힙+신당동)' 술집 옆 양곡창고에 '소변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장서윤 기자

경찰에는 소음, 폭행 등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어떤 집에서 밤새 노래를 시끄럽게 틀고 고성방가를 한다”는 민원이 접수돼 경찰이 현장에 가보니 새로 생긴 파티룸에서 여럿이 모여 노는 소리였다. 경찰은 “주민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금만 주의해달라”고 안내한 뒤 민원인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소음 민원이 늘어나지만 대부분 자유업이라 제재가 어렵고 경찰이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술집이 많다 보니 고성방가나 담배꽁초 관련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며 “술 먹고 지나가는 사람이 째려본다며 폭행 시비가 붙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옛 ‘싸전거리’…떠나는 노인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힙당동(힙+신당동)'으로 부상한 황학동 일대는 1950~60년대 서울의 최대 양곡시장이었다. 장서윤 기자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힙당동(힙+신당동)'으로 부상한 황학동 일대는 1950~60년대 서울의 최대 양곡시장이었다. 장서윤 기자

신당동은 원래 1950~60년대 서울 최대의 양곡 시장이 있던 싸전거리였다. 힙당동은 신당역 뒤쪽이어서 붙은 이름이지만 주소상으론 황학동, 일부는 흥인동에 속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배달원으로 일했던 쌀가게 ‘복흥상회’가 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동쪽으로 5분만 걸으면 서울중앙시장, 북쪽으로 5분만 걸으면 황학동 주방거리, 벼룩시장이 펼쳐져 노인들의 놀이터로 여겨졌다.

황학동에서 50여 년째 가구를 팔아온 김용진(81)씨는 “(새로 생긴) 커피집 같은 데도 젊은 사람들이나 가지, 우리는 그런 커피를 마실 줄도 모른다”며 “장사하는 사람들도 젊은 사람으로 바뀌고, 여기 있던 사람들도 다 떠나서 나이 먹은 사람이 별로 없다. 두세 명 될까 말까”라고 말했다. 3층 창문에서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전성주(65)씨는 “저기 술집은 안에 뭐가 있는지 주말만 되면 젊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린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한 건물에서 전성주(65)씨가 창밖 젊은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전씨는 ″이 골목에 젊은 친구들이 많아진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지난 12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한 건물에서 전성주(65)씨가 창밖 젊은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전씨는 ″이 골목에 젊은 친구들이 많아진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황학동 원주민들은 떠나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황학동 주거인구는 2023년 3분기 1만 1965명, 전년 같은 분기 대비 605명 감소했다. 주거인구가 1457명에 불과한 인근의 ‘힙지로’(힙+을지로)와 달리 황학동은 원래 주거인구 비율이 높아 주민들 고충도 크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시대에 따라 도시의 변화도 불가피하지만 원주민이 피해를 보고 떠나야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처럼 카페·술집 등 상인들이 관리비를 거둬 골목 청소를 책임지거나, 1년에 한두 번은 ‘감사의 날’로 정해 어르신들을 위한 커피를 제공하는 것도 상생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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