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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에 좋다, 노벨상감" 7병 1240만원 숙성 식초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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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식초를 7년간 발효 후 판매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업신고 대상인 ‘즉석판매 제조‧가공업’에서 제외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제조기간의 길이로 ‘즉석’ 여부를 따지지 말아야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파킨슨 변비 고민에… “의사도 사간다, 노벨상감” 식초 팔아

A씨는 2020년 5월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장모를 둔 피해자에게 식초 7병을 팔고 그 대가로 1240만원을 받아챙긴 혐의(사기·식품위생법 위반 등)로 이듬해 검찰에 기소됐다. A씨는 효능이 높은 식초는 한 병에 300만원, 효능이 다소 낮은건 20만원으로 쳤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내 노모도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인데, 내가 직접 만들어서 7년 발효한 식초를 먹고는 화장실 변기가 넘칠 정도로 변을 보고 회복했다” “효과가 좋은 300만원짜리 식초 원액은 5주간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 “유명 대학병원 연구진이 매달 한병에 500만원을 주고 연구용으로 식초를 사 간다. 논문을 준비중이고 노벨상 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면 아마 가격은 엄청 비쌀 것”이라고도 했다.

7년 숙성 한병 300만원… 대법 “7년도 ‘즉석’일 수 있어”

1·2심 법원에선 A씨가 피해자를 속여서 식초를 팔았다는 혐의(사기·식품위생법 위반 등)를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선 이 가운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에 대해 앞선 법원과 달리 더 따져봐야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식품위생법에서 직접 식품을 만드는 ‘식품 제조‧가공업자’는 영업 등록을 해야하고, 이 식품을 덜어서 판매하는 ‘즉석판매 제조‧가공업자’는 영업 신고를 해야 한다. ‘등록’은 관할 관청에 등록서류를 내고 여러 요건을 따져본 뒤 승인을 받아야 하는 좀 더 까다로운 과정이필요하고, ‘신고’는 ‘제가 이런 걸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서류를 제출하면된다. 만약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지만,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엔 형량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다소 가볍다. 검찰은 A씨에 대해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혐의(식품위생법 37조 및 시행령 26조)로만 기소했다.

등록도, 신고도 하지 않은 채 7년 숙성 식초를 만들어 팔던 A씨는 1·2심에서 ‘솔잎을 자연숙성시켜 만든 것이어서 영업등록이나 신고 대상이 아니고, 설혹 관청에 서류를 제출해야하더라도 즉석식품이어서 영업신고 대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1·2심은 이에 대해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은 고객의 의뢰를 받아 해당 식품을 즉석에서 제조 내지 가공하여 판매하지만, 7년 가까운 제조기간이 소요되는 이 식초의 제조 행위를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7년 발효된 식초의 판매가 ‘즉석판매 제조‧가공업’에 해당할 수 있는지를 다시 검토해야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즉석판매 제조‧가공업’ 대상 식품으로 보고 있을 뿐, 제조기간의 장단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지 않는다”며 “제조기간이 7년 걸렸더라도 ‘즉석판매 제조‧가공업’ 대상 식품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등에서 식초를 직접 만들어 파는 경우에는 즉석식품으로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7년 숙성 식초를 ‘즉석판매 제조‧가공업’의 대상 식품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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