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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해남 2100원"…새벽 배송 시대, '4일 배송'에 빠진 MZ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시내 CU편의점에 알뜰택배 접수 기기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CU편의점에 알뜰택배 접수 기기 모습. 연합뉴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3)씨는 ‘하이브리드’ 택배 이용자다. 느지막이 일어난 휴일에는 이불 속에서 마트 앱을 켠다. 점심에 구워 먹을 돼지고기 목살과 냉동 볶음밥 등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한 시간이 오전 11시 49분. 김씨가 씻고 머리카락을 다 말리기도 전, 집에서 1.4㎞ 떨어진 기업형수퍼마켓(SSM) 매장에서 배송한 물건이 도착했다. 주문부터 배송까지 걸린 시간은 단 35분. 말 그대로 ‘즉시 배송’이다. 김씨는 30분 만에 ‘손가락 장보기’가 끝나는 퀵커머스(Quick Commerceㆍ1~2시간 내 근거리 배송)에 익숙하다.

이런 김씨도 가끔은 3~4일씩 느긋하게 배달을 기다릴 때가 있다. 바로 편의점 반값ㆍ알뜰 택배를 이용할 때다. 취미 용품이나 옷ㆍ신발을 중고로 사고팔 때는 편의점 택배 키오스크를 찾는다. 김씨는 “급할 땐 택시를, 평소엔 버스를 타듯이 배달도 즉시 배송은 택시로, 반값택배는 버스로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골라 쓴다”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49분에 주문한 돼지고기 등 신선식품은 오후 12시 24분, 35분만에 문 앞에 도착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49분에 주문한 돼지고기 등 신선식품은 오후 12시 24분, 35분만에 문 앞에 도착했다.

퀵커머스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느린 배송’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있다. 편의점 반값ㆍ알뜰 택배다. 2019년 GS25가 선보인 ‘반값 택배’는 물건을 편의점의 A점포에서 B점포로 배송하는 편의점 간 택배다. 대문 앞으로 하루만에 배송되는 일반 택배와 달리, 길면 4일이 걸리고 물건도 편의점에서 찾아야 한다. 대신 배송비가 절반 수준이다. 삼각김밥·샌드위치 등 편의점 상품을 배달하는 기존 물류 시스템에 택배 물건을 얹어 보내 배송비를 낮췄다. CU도 ‘알뜰 택배’라는 이름으로 지난 2020년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 GS25에 따르면 도입 첫해 9만여 건이던 반값 택배 이용 건수는 지난해 1200만 건으로 5년 만에 130배 성장했다. 이용자의 81%가 20~30대다.

저렴한 가격·접근성·안전성이 인기요인

반값ㆍ알뜰 택배의 인기 비결은 크게 저렴한 가격ㆍ접근성ㆍ안전성 세 가지다. 우선 비용. 무게에 따라 1800~2700원 수준이어서 우체국 택배(최저 4000원), 일반 택배(3500원 이상)의 절반, 말 그대로 반값에 가깝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중고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CU의 알뜰택배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421.9% 성장했다. GS25 반값 택배 역시 같은 기간 299.3% 늘었다. 김씨는 “1만원짜리 중고 거래에 택배비 4000원은 부담이라 이럴 땐 반값 택배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반값 택배 이용자 A씨는 “서울에서 전남 해남까지 중고 물건 보내는 데 2100원이면 된다”며 “물건값 깎아달라는 거래 상대에게 반값 택배로 보내 비용을 줄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CU알뜰택배를 이용해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전남 해남의 편의점의로 택배를 보내자 접수일 포함 4일만에 도착했다. 택배가 도착하면 보낸사람과 받는사람의 휴대전화로 택배 수령 안내 메시지가 온다.

CU알뜰택배를 이용해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전남 해남의 편의점의로 택배를 보내자 접수일 포함 4일만에 도착했다. 택배가 도착하면 보낸사람과 받는사람의 휴대전화로 택배 수령 안내 메시지가 온다.

주거지 근접 상권, 일명 ‘슬세권’ 편의점을 배송 거점으로 쓸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반값 택배의 인기 요인이다. 서울 기준 1㎢당 편의점 수를 나타내는 편의점 밀집도는 2006년 3.5개에서 2021년 14개로 늘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니 택배를 출근길에 보내고 퇴근길에 찾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CU 알뜰 택배가 가능한 점포 수는 전국에 약 1만7000여개. 우체국 택배 점포(3335개, 2023년 12월)보다 더 촘촘하다. 집주소 같은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고, 분실 위험이 낮은 점도 장점이다.

'생활 플랫폼'된 편의점, 택배 서비스가 이끌어 

편의점 업계는 반값ㆍ알뜰 택배 서비스를 ‘생활 플랫폼으로서 편의점’ 전략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는다. 편의점은 2006년 퀵서비스·사이버머니 판매를 시작했고 2012년엔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했다. 또 2021년에는 편의점 내 은행점포를 개설하는 등 물건 판매처를 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 플랫폼으로 변신을 추진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점포가 줄고 있는 은행ㆍ우체국 대신 편의점이 사람들을 점포로 끌어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했다. GS25는 반값 택배 시작 이후 5년간 전국 1만6000여개 점포에 누적 2900만건의 택배가 접수됐고, 택배 수발신 고객이 모두 편의점을 방문해 집객효과만 누적 5800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집객→구매’ 전환은 숙제

편의점에 발을 들였다고 해서 모두 지갑을 여는 건 아니다. GS25에 따르면, 반값 택배 이용자 3명 중 1명은 편의점에서 물건도 샀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3명 중 2명은 추가 구매 없이 매장을 떠났다는 말이다. 택배 서비스 자체로 거두는 수익은 미미하다는 점에서 택배에서 구매로 전환은 편의점들의 숙제다.

서울 은평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택배 서비스에 대해 “말 그대로 ‘서비스’일 뿐, 수수료로 버는 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택배 보관 공간 마련 등 업무가 느는 측면이 있지만, 고객이 한 번이라도 더 점포에 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택배를) 유지한다”고 했다. CU 관계자는 “당장의 수익보다도 고객들에게 ‘생활 플랫폼으로서 편리하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주는 건 유의미한 효과”라고 말했다.GS25 관계자는 “잘 만든 서비스는 마케팅 비용 없이 고객을 매장으로 모아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매장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간편결제 ‘GS페이’를 택배 서비스에도 도입해 ‘락인’(Lock-In, 묶어두기) 효과를 더 키우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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