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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수리 이틀 만에 여의도로…판·검·경 출신 대거 출사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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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05면

총선 앞 출마 러시

대검찰청이 12일 현직 검사 신분으로 출판기념회를 열고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에 대해 법무부에 중징계를 청구했다. 중징계는 정직 이상의 징계를 말한다. 대검은 “향후에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훼손하거나 의심받게 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날 전국 검찰청에 “공직자로서 정치적 중립의무를 엄정히 준수하고 작은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총선출마

총선출마

대검의 이례적 움직임은 이례적인 검사 출마 러시와 맞물렸다. 판사·경찰 사정도 비슷하다. 과거엔 전직(轉職) 기간이 있었다. 요즘엔 사표가 수리되기 전부터 총선 행보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법치’ 관련 공직자로서 적절한 처신인가 논란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는 12일 전상범 전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창원지법 등을 거치며 15년간 판사로 근무했다. 사표 수리 후 이틀 만에인재영입 방식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지난 11일 사표가 수리된 심재현 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에선 감찰과 형사사건 기소 등의 이유로 사표 수리가 안 된 현직 검사가 사실상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친문 검사’로 꼽히던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지난 8일 “윤석열 사단을 청산하는 최선봉에 설 것”이라며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된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출마를 선언했다.

이성윤 연구위원은 2019년 6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25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신성식 연구위원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던 2020년 6∼7월 당시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기자의 대화 녹취록 내용이라며 KBS 기자에게 허위사실을 알린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두 사람이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채 총선 출마에 나서는 것도 논란거리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퇴직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명 ‘황운하 판례’가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 대전경찰청장 시절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고발된 상태에서 2020년 민주당 후보로 총선 출마를 강행했는데, 사직서가 처리되지 않은 현직 경찰 신분이었다. 대법원은 이듬해 4월 “공직 사퇴 기한 내에 사직서를 냈다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출마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직서만 내면 출마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검의 중징계 청구 대상인 김상민 검사는 지난달 28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검이 사직서를 반려한 상태에서 김 검사는 지난 6일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국민의힘 소속으로 경남 창원 의창구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쳤다.

경찰 출신 중에서도 지난 10일 사직한 이상률 전 경남경찰청장과 한상철 전 양산경찰서장이 각각 고향인 경남 김해을과 경남 양산갑에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총경회의)’에 참석했다가 좌천된 이지은 전 총경은 지난 5일 퇴임사에서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며 정치 입문을 시사했다. 민주당은 앞서 총경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총경을 영입했다.

이들 행보에 대해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현직에 있을 때 과연 수사와 재판을 공정하게 했을지, 국민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입당해 공천받는 건 정상이 아니다”며 “정치적 중립 의무가 더 강조되는 수사 기관과 법원 출신에 대해서는 선거일로부터 90일 전이 아니라 최소 1년 전에 사퇴해 정치권의 공천 약속을 기대할 수 없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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