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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억 아낀다"는데…지하철 예비차량 비율, 다시 고민한다

중앙일보

입력

 [이슈분석] 

응급상황에 대비해 차량기지에 대기 중인 예비차량들. 사진 서울교통공사

응급상황에 대비해 차량기지에 대기 중인 예비차량들. 사진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적정 예비율 산정에 관한 연구용역.'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이하 서교공)가 최근 발주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외부 연구용역의 제목이다. 전동차 예비율은 출퇴근 등 피크시간대에 보유차량 대비 예비차량 비율을 의미한다. 예비차량은 사고나 고장 등 유사시를 대비해 운행 예정차량을 제외하고 즉시 영업운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로 대기 중인 차량이다. 예비율이 10%라고 가정하면 보유차량이 100대인 경우 예비차량 10대가 있어야 한다.

 서교공을 비롯해 부산·인천·대전·대구·광주의 도시철도운영기관과 코레일 등은 모두 각기 예비율을 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서교공이 지난해 6월에 잠정조사한 바에 따르면 예비율은 광주(17.4%), 인천(14.3%), 서울(12.9%), 부산(11.1%), 대구(10.9%), 대전(9.5%) 등의 순이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그런데 서교공이 새삼스럽게 적정 예비율을 다시 따져보겠다고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적정 예비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예비율이 너무 높으면 차량 구입비용과 유지비, 관리인력 등이 과도하게 소요된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사고나 고장 등 비상상황 대비가 어려워지는 탓에 합리적인 예비율 산정이 중요하다.

 예비율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는 것도 용역 발주의 한 요인이다. 현재 도시철도 건설과 관련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 도로·철도 부문 연구'에선 12%를, 국토교통부의 '교통시설 투자평가지침'에는 10%의 예비율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 기준이 없어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도시철도 운영기관마다 예비율이 제각각인 이유다.

 나영수 서교공 도시철도연구원장은 “실제로 전동차를 운영하다 보면 중정비 등으로 인해 즉시 투입이 안 되는 '비가용차량'이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없다”며 “비가용차량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서 예비율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 본사.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본사. 연합뉴스

 사실 이번 연구용역은 유사시 영업운전 투입을 바로 할 수 없는 비가용차량의 범위를 어떻게 일원화하느냐가 핵심이다. 서교공에 따르면 인천교통공사는 중정비검사나 월 단위검사를 받는 차량도 '비가용차량'에 넣지 않고 모두 예비차량으로 계산한다. 이러면 보유차량에서 운행차량을 뺀 예비차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예비율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부산, 광주, 대구 등에서는 중정비 검사와 월 단위 검사에 대청소까지 포함해서 비가용차량으로 분류한다. 서교공은 대청소는 제외하고 계산한 수치가 12.9%였다. 이처럼 비가용차량을 나누는 기준이 기관마다 다른 탓에 예비율 역시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는 8월까지 진행될 연구용역의 목적이 "전동차 예비율에 대해 기관별, 부서별로 상이한 비가용차량 범위에 대한 해석을 일원화하여 전동차의 적정 예비율 산정 및 차량운용의 효율적인 개선방안 도출"로 명시돼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연구용역을 통해 나온 적정 예비율이 현재보다 낮다면 서교공으로서는 차량 구입비 등 여러 면에서 절약이 가능해진다. 서교공이 잠정적으로 추산한 수치이지만 현재 12.9%인 예비율이 8%로 낮아지면 2180억원의 차량구매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53편성인 예비차량이 33편성으로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러면 관리인력 규모도 작아진다. 또 6%로 낮추면 3000억원 넘게 절약 가능하다.

 운영 적자가 누적된 서교공으로서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이다. 서교공 관계자는 “최근 새로 제작한 전동차는 기존보다 성능이 좋아져 검사주기가 길고, 고장이 적은 데다 유지보수 기술도 향상돼 여러모로 전동차 활용률이 높아졌다”며 "이를 고려하면 현재보다 예비율을 더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교수는 “예비율이 높으면 비용이 증가하고, 반대로 낮으면 비상상황 때 대응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예비율 산정이 필요하다”며 “만약 차량의 내구성이나 고장률이 낮아졌다면 이에 따라 예비율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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