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와당(기와)을 박물관에 기증한 이유가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1911~1992) 선생의 와당·벽돌 기증실에 감명과 자극을 받아서였다. 두 컬렉션을 한 방에서 나란히 보고 싶은 소망이 드디어 이뤄졌다.”(유창종)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실 개편 1671점 한자리에 #'기와 검사' 등 기증자들 "한데 모여 의미 커졌다"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관실. 2년 여에 걸친 단장을 마치고 12일 재개관에 앞서 역대 주요 기증자 및 가족·유족들에게 개편 취지를 설명하는 행사가 열렸다. 코리아나 화장품 창립자로서 2009년 전통 화장용기 214점을 기증한 유상옥(91) 회장 등 10여명이 모였다. 조선 청화백자 등 도자기 400여점을 기증한 박병래(1903~1974) 선생의 딸 박노원(91)씨는 휠체어를 탄 채 참석했다. 이들은 손세기·손창근 기증 ‘세한도’ 등 국보 3건과 보물 12건을 포함, 총 1082건 1671점이 전시된 공간을 꼼꼼히 둘러봤다.
특히 ‘기와 검사’로 이름난 유창종(79) 유금와당박물관장의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인 1978년 충주 탑평리에서 연꽃무늬 수막새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옛 기와에 매료돼 수천점의 관련 유물을 모았다. 그러던 중 이우치 이사오가 1987년 한·일 친선을 위해 삼국~조선 시대 기와·벽돌 1082점을 박물관에 기증한 데 큰 자극을 받았다.
유 관장은 “당시에 박물관이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있었는데, 거기에 일본인이 기증한 훌륭한 컬렉션이 있으니 나중에 후손들이 ‘한국인들은 뭘 했나’ 할 것 같았다. 그에 못지않은 유물들을 수집해 2002년 1875점을 기증하면서 조건으로 ‘두 컬렉션을 나란히 놓아달라’고 했다. 2005년 용산 이전 후에도 여의치 않았는데 드디어 한·일 기증 컬렉션이 만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개편한 기증관은 약 2129㎡(약 644평) 규모다. 기존에는 ‘이홍근실’, ‘박병래실’ 등 기증자의 이름을 따 11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서 감상에 다소 제약이 있었다. 이제는 토기 및 도자기, 금속공예품, 목가구, 서화, 근현대 판화 등 주제별로 유물을 묶어 서로가 보완될 수 있게 했다. 4차례에 걸쳐 총 1만202점의 문화유산을 기부한 이홍근(1900∼1980) 선생 등의 사연도 전시실 곳곳에 곁들였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기증품들이 서로 빠진 역사와 의미를 메워주며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지팡이를 짚고 걸음한 유상옥 회장은 함께 온 딸 유승희 코리아나미술관·화장박물관장과 각종 공예품을 둘러보면서 “나는 화장품 관련이라 주로 작은 유물들인데, 다른 기증품들과 나란히 봐서 흡족하다”고 말했다. 기증 당시 소회로 그가 “곱게 키운 딸 시집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 게 언급되자 다른 참석자가 “이렇게 좋은 대접 받으니 궁궐에 시집보낸 셈”이라고 말해 웃음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단독으로 전시된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의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인 손기정은 부상품이었던 투구를 50년 만인 1986년 그리스 정부로부터 뒤늦게 전달받았고 이를 1994년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시실 마지막엔 테마 공간을 마련해 개별 기증품을 집중 소개한다. 첫 전시품은 2020년 손창근(95) 선생이 기증해 큰 화제를 모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다. 거동이 불편한 부친을 대신해 참석한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아버님이 기부하신 서화가 잘 보관·유지되고 있다고 말씀드리게 돼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뜻깊은 기증·기부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한도’와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기증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등 2점은 서화 특성상 5월 5일까지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