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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백자·와당…"자식들 궁궐보낸 듯" 기증품 1671점 모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12일 기증관실 재개관에 앞서 역대 주요 기증자 및 가족·유족들에게 개편 취지를 설명하는 행사를 11일 열었다. 조선 청화백자 등 도자기 400여점을 기증한 박병래(1903~1974) 선생의 딸 박노원(가운데 휠체어에 앉은 이)씨 등 참석자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12일 기증관실 재개관에 앞서 역대 주요 기증자 및 가족·유족들에게 개편 취지를 설명하는 행사를 11일 열었다. 조선 청화백자 등 도자기 400여점을 기증한 박병래(1903~1974) 선생의 딸 박노원(가운데 휠체어에 앉은 이)씨 등 참석자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가 와당(기와)을 박물관에 기증한 이유가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1911~1992) 선생의 와당·벽돌 기증실에 감명과 자극을 받아서였다. 두 컬렉션을 한 방에서 나란히 보고 싶은 소망이 드디어 이뤄졌다.”(유창종)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실 개편 1671점 한자리에 #'기와 검사' 등 기증자들 "한데 모여 의미 커졌다"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관실. 2년 여에 걸친 단장을 마치고 12일 재개관에 앞서 역대 주요 기증자 및 가족·유족들에게 개편 취지를 설명하는 행사가 열렸다. 코리아나 화장품 창립자로서 2009년 전통 화장용기 214점을 기증한 유상옥(91) 회장 등 10여명이 모였다. 조선 청화백자 등 도자기 400여점을 기증한 박병래(1903~1974) 선생의 딸 박노원(91)씨는 휠체어를 탄 채 참석했다. 이들은 손세기·손창근 기증 ‘세한도’ 등 국보 3건과 보물 12건을 포함, 총 1082건 1671점이 전시된 공간을 꼼꼼히 둘러봤다.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실의 개편 설명회에서 유창종(왼쪽)·금기숙(오른쪽) 유금와당박물관장 부부가 자신들이 기증한 와당(기와) 컬렉션 앞에서 윤성용 박물관장(가운데)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실의 개편 설명회에서 유창종(왼쪽)·금기숙(오른쪽) 유금와당박물관장 부부가 자신들이 기증한 와당(기와) 컬렉션 앞에서 윤성용 박물관장(가운데)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특히 ‘기와 검사’로 이름난 유창종(79) 유금와당박물관장의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인 1978년 충주 탑평리에서 연꽃무늬 수막새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옛 기와에 매료돼 수천점의 관련 유물을 모았다. 그러던 중 이우치 이사오가 1987년 한·일 친선을 위해 삼국~조선 시대 기와·벽돌 1082점을 박물관에 기증한 데 큰 자극을 받았다.

유 관장은 “당시에 박물관이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있었는데, 거기에 일본인이 기증한 훌륭한 컬렉션이 있으니 나중에 후손들이 ‘한국인들은 뭘 했나’ 할 것 같았다. 그에 못지않은 유물들을 수집해 2002년 1875점을 기증하면서 조건으로 ‘두 컬렉션을 나란히 놓아달라’고 했다. 2005년 용산 이전 후에도 여의치 않았는데 드디어 한·일 기증 컬렉션이 만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토기와 도자기를 관람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관 재개관을 기념해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와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5월 5일까지 공개한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토기와 도자기를 관람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관 재개관을 기념해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와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5월 5일까지 공개한다. 연합뉴스

개편한 기증관은 약 2129㎡(약 644평) 규모다. 기존에는 ‘이홍근실’, ‘박병래실’ 등 기증자의 이름을 따 11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서 감상에 다소 제약이 있었다. 이제는 토기 및 도자기, 금속공예품, 목가구, 서화, 근현대 판화 등 주제별로 유물을 묶어 서로가 보완될 수 있게 했다. 4차례에 걸쳐 총 1만202점의 문화유산을 기부한 이홍근(1900∼1980) 선생 등의 사연도 전시실 곳곳에 곁들였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기증품들이 서로 빠진 역사와 의미를 메워주며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지팡이를 짚고 걸음한 유상옥 회장은 함께 온 딸 유승희 코리아나미술관·화장박물관장과 각종 공예품을 둘러보면서 “나는 화장품 관련이라 주로 작은 유물들인데, 다른 기증품들과 나란히 봐서 흡족하다”고 말했다. 기증 당시 소회로 그가 “곱게 키운 딸 시집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 게 언급되자 다른 참석자가 “이렇게 좋은 대접 받으니 궁궐에 시집보낸 셈”이라고 말해 웃음이 쏟아졌다.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박물관 관계자가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가운데) 등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재개관을 하루 앞두고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박물관 관계자가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가운데) 등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석자들은 단독으로 전시된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의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인 손기정은 부상품이었던 투구를 50년 만인 1986년 그리스 정부로부터 뒤늦게 전달받았고 이를 1994년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시실 마지막엔 테마 공간을 마련해 개별 기증품을 집중 소개한다. 첫 전시품은 2020년 손창근(95) 선생이 기증해 큰 화제를 모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다. 거동이 불편한 부친을 대신해 참석한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아버님이 기부하신 서화가 잘 보관·유지되고 있다고 말씀드리게 돼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뜻깊은 기증·기부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한도’와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기증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등 2점은 서화 특성상 5월 5일까지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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