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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학대 의심’ 초3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대법 “증거로 못 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초등학생 자녀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내, 몰래 한 녹음은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8년, 학부모 A씨는 초등학교 3학년 자녀에게 “선생님이 1·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전학 간 지 얼마 안 된 학교에서다. A씨는 아이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었다.

아이 말은 사실이었다. 교사 B씨가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라고 한 말 등이 녹음됐다. A씨는 B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법원은 교사 B씨의 발언 내용과 별개로 학부모 A씨의 행동이 옳은가를 따졌다. 통신비밀보호법 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1·2심은 학부모 편에 섰다. 서울동부지법은 “30명 정도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11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교사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며,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학교는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며, 학생 아닌 사람이 교실에 들어와 교사 말을 들을 일은 없다는 이유다.

과거 자녀 연령 등에 따라 부모의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한 사례는 있다. 생후 10개월 아기에게 돌보미가 욕설하는 걸 부모가 녹음한 사건이다. 대구지법은 “언어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한 욕설은 ‘대화’가 아니다”라며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다. 대법원도 이를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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