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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총선 앞두고 '신용사면’ 추진…성실 차주 역차별 논란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당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기간 대출을 연체했지만, 전액 상환한 서민·소상공인의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신용 사면’을 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이용료를 내지 못한 취약계층에 대한 채무 조정도 이뤄진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11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회를 열어 신용 사면에 합의했다. 대상자 수는 최대 290만명에 달할 예정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21년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2000만원 이하 연체자 중 2024년 5월까지 전액 상환하는 사람의 대출 연체 기록을 삭제하면 정상적인 금융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통상 100만원 넘는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이른바 ‘신용불량자’로 분류한다. 신용평가사(CB) 등이 해당 정보를 신용평가에 최장 5년까지 활용하기 때문에 차주가 상환을 마쳤더라도 신용카드 사용과 대출 이용 등 금융 거래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정의 이번 조치를 두고 신용 취약 계층의 ‘주홍글씨’를 지워주는 측면에서 신용 사면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연체 기록을 삭제하면 취약층이 신용카드를 정상 발급받거나 신용 대출을 받을 때 도움을 준다. 은행권 대환대출을 통해 기존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꿀 기회도 생긴다. 연체 이력 때문에 제도권 금융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 사금융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신용 사면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2001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도 신용 사면이 이뤄졌다. 이번 조치는 2021년 사면과 비슷하다. 당시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 연체에 대해 2021년 말까지 빚을 전액 상환한 개인과 개인사업자 230만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했다. 당시 조치로 개인 평균 신용점수(NICE 기준)가 24점 올랐고, 개인사업자 평균 신용등급은 0.5등급 상승했다.

다만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미 코로나19를 이유로 신용 사면이 한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상환 기일을 어겼을 경우 받는 불이익을 면제하는 셈인 데다, 악조건 속에서도 제때 빚을 갚은 사람에 대한 역차별 소지도 있다. 주식·부동산 등 투자를 이유로 빚을 낸 차주를 가려내기도 어렵다. 최근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추진과 마찬가지로 4월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대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 사면을 반복하면 누가 돈을 제때 갚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며 “(신용 사면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연체자가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리를 낮추거나 장기로 나눠 대출을 끝까지 갚도록 하는 등 대환 대출을 활성화하는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5월까지 성실하게 상환을 마친 경우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며 “적극적으로 상환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 우려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당정은 또 금융 채무와 통신 채무를 통합해 채무 조정을 하는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채무조정 기능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통신 채무를 동시 연체한 사람은 금융 채무만 연체한 사람에 비해 경제 사정이 더 어려운 한계 채무자일 가능성이 높다. 해당자는 최대 37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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