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에서 중국의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해 무료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오픈 소스’ 기술까지 통제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의 각종 규제에도 중국이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해 첨단 반도체 개발에 나설 수 있으니, 이를 차단하겠다는 심산이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하원 ‘미국과 중국공산당의 전략적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중국특위)’는 중국이 RISC-V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지난달 조 바이든 행정부와 논의했다.
중국특위의 민주당 간사인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의원은 “중국은 이미 RISC-V를 통해 반도체 기술 수출 통제 규제를 약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RISC-V 참여자들은 중국 공산당의 이익이 아닌 기술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무료 이용” 업계 최강 ARM 대항마
RISC-V는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가 내놓은 오픈소스 기반의 반도체 아키텍처(설계방식)다. 오픈소스 기반이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해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SW)를 설계·제조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업계를 장악한 영국 회사 ARM이 만든 아키텍처의 대항마로 평가받고 있다. ARM의 아키텍처는 작고 효율적이며 전력 소모가 적은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어 스마트폰·태블릿PC 등에 많이 활용된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 이상, 태블릿PC의 85% 이상이 ARM의 아키텍처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엔 인공지능(AI) 반도체에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이러다보니 독과점 우려가 크다. ARM은 로열티(사용료)를 받고 삼성전자, 애플, 퀄컴, 애플, 등 세계 1000여 반도체 기업에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있다. ARM이 로열티 가격을 올리거나 거래를 거절할 경우 반도체 제조 회사로선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RISC-V다. 현재 삼성전자와 인텔, 퀄컴, 구글 등 전 세계 70여개 국 약 4000개 업체가 RISC-V 진영에 가담해 아키텍처를 같이 개발하고 있다.
美 “中 반도체 규제 우회 수단 차단해야”
문제는 여기에 중국 IT 기업인 화웨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각종 수출 통제 조치를 통해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걸 막고 있다.
중국이 RISC-V를 이용해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으므로 이런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사전에 RISC-V 기술의 중국 수출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미 하원 중국특위의 생각이다. 경쟁사인 ARM이 RISC-V를 견제하기 위해 미 정치권에 벌인 로비도 이런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영어 핵무기 책 읽으니 알파벳 금지하자는 것”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 견제를 위해 RISC-V 규제 카드를 살펴보고 있지만 고심이 크다. 오픈소스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는 전례가 없고, 효과도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RISC-V는 원본 코드를 보고 수정할 수 있는 리눅스(윈도와 비슷한 오픈소스 PC운영체제)와 같은 방식이라 온라인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고 개선책도 제안할 수 있다.
라이선스(특허) 기반 기술처럼 차단하는 게 쉽지 않다.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인 에스페란토 테크놀로지스의 데이브 디첼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중국인들이 영어로 쓰인 핵무기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영어 알파벳을 금지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바보 같은 논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