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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에 교사 “학교 안다닌 애같아” 몰래 녹음…대법은 “불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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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실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초등학교 교실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초등학교 3학년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들려 보낸 ‘학부모의 몰래 녹음’은 불법이라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8년, 학부모 A씨는 새 학교로 전학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녀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선생님이 1, 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고 했어요.” A씨는 등교하는 아이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었다.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교사 B씨가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1, 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 봐”라고 한 말 등이 녹음됐다. A씨는 B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고 그해에 재판이 시작됐다.

법원은 교사 B씨가 한 말이 얼마나 나쁜가와는 별도로 학부모 A씨가 한 행동이 옳은가도 따져봐야 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B씨는 “아동이 수업을 방해해 주의를 준 것”이라며 “학부모의 녹음은 위법수집증거”라고 주장했다.

1·2심은 학부모 편에 섰다. 서울동부지법은 “초등학교 3학년은 표현력이 제한돼 있고, 말로 하는 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에 적절한 방법이 없다”며 “30명 정도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가 아니다”고 봤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11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교사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며 서울동부지법이 판결을 다시 해야 한다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교사 B씨의 발언은 특정된 30명 학생에게만 공개됐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며 “듣는 사람이 여러 명이었다고 해도 ‘공개된 대화’는 아니다”고 했다. 학교는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며 학생이 아닌 사람이 교실에 들어와 교사가 하는 말을 들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런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한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녹음한 장소나 자녀의 연령에 따라 ‘몰래 녹음’이 아동학대 증거로 인정된 사례는 있다. 생후 10개월 아기가 돌보미로부터 욕설을 들은 걸 부모가 몰래 녹음한 사건에서, 대구지법은 “언어 능력이 없는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아 타인 간 ‘대화’가 아니다”는 점과 “피해 아동은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말조차 할 수 없어 부모로선 몰래 녹음 외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짚어 녹음을 증거로 인정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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