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정인이법' 국회서 폐기 위기…"여야, 학대아동 외면했다"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또다시 기회를 놓치면 다시 개정에 이르기까지 또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우려됩니다”(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대당한 자녀가 직접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있도록 한 정부의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안 입법공청회가 10일 열렸다. 2022년 11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지 1년 2개월 만이다. 개정안은 법무부와 대법원이 함께 만들고 2022년 5월 어린이날에 맞춰 입법예고한 뒤 국회에 넘긴 ‘정인이 사건’(2020년 10월 양부모의 입양아 학대·살해 사건) 후속법안이었다.

법안은 하지만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오래 방치돼오다 또다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 불과 140일밖에 남지 않아서다. 유사한 취지의 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폐기된 적 있다.

개정안은 1990년 가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32년 만에 나온 전부 개정안이다. “아동 인권 등이 강화된 시대 현실에 비해 법체계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에 따라, 양육 관련 소송에서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게 핵심이다. 특히 부모가 학대 등 친권을 남용하는 경우 미성년 자녀가 직접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학대 자녀가 친권 상실을 청구하려면 학대 가해자인 부모와 가까운 친척을 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해 절차상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법원이 친권자 또는 양육권자를 지정하는 재판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미성년 자녀의 진술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도록 하고, 양육비 지급 명령을 받은 사람이 30일 이내 안 줄 경우 감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아동 인권 현장과 법조계가 한목소리로 입법을 요구하는 법안이기도 하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가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의원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공청회에는 ▶이광우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이동진 서울대 법전원 교수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 1부장 ▶이경아 법무법인 지엘 변호사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10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찬반 양측의 발제로 진행되는 통상의 공청회와 달리 “법 개정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이광우 부장판사)는 게 이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이동진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미성년자가 절차 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며 “UN 아동권리협약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바이고, 다른 나라의 선진입법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실현된 바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조경애 부장도 “미성년자의 생계와 복리에 직접 관련되는 양육비 이행확보 수단을 강화한 가사소송법 개정안은 양육비 지급 불이행으로 고통받는 미성년자와 한부모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무쟁점에 가까운 이 법안이 이제야 논의를 시작한 건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여야가 정쟁만 거듭하다보니, 이런 무쟁점 법안은 가장 뒷전에 밀렸다”며 “아동은 투표권도 없는데 국회의원들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었겠나”고 지적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줄줄이 지각하고 자주 자리를 비웠다. 법사위 1소위원(민주당 소병철·권칠승·박용진·박주민·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유상범·장동혁·정점식 의원)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은 공청회를 주재한 소병철 1소위원장과 유상범·이탄희 의원 등 세 사람뿐이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여야는 20대 국회에서 2018년 대법원 가사소송법 개정위가 27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한 개정안을 공청회 포함 단 한 번의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한 바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미 한차례 처참히 폐기됐던 만큼 이번 21대 국회에서만큼은 빠른 입법 논의를 기대했는데 인제야 논의를 시작한다는 게 안타깝다. 이번만큼은 또다시 폐기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소병철 소위원장은 공청회에서 “정부가 10년 이상을 준비해왔던 법안이기 때문에 법사위 1소위도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 법안에 대한 결론을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