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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캔버스 된 광화문…천년 유산과 만나는 '빛의 마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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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그 양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중 한국 작가 이이남의 ‘광화산수도의 한 장면’. 사진 문화재청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그 양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중 한국 작가 이이남의 ‘광화산수도의 한 장면’. 사진 문화재청

경복궁 근정전의 임금 옥좌 뒤편에 걸린 일월오봉도가 서울 도심 마천루와 어우러지며 광화문 문루를 알록달록 수놓는다(‘광화산수도’).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고 다시 이지러지는 풍경이 길다란 담장을 따라 펼쳐지더니 파도 같은 광선이 밀려오고 퍼져간다(‘Attraction’).

오는 21일까지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그 양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의 장면들이다. 총 400m 길이의 남측 궁장(궁궐 담장)을 캔버스 삼아서 프로젝터로 영상을 입히고(프로젝션 맵핑) 화려한 조명으로 주변을 수놓는다. 금·토·일요일 저녁이면 네 차례(18시~22시, 매시 정각) 35분씩 진행되는 이번 아트 쇼의 참여 작가는 총 5명. 한국 작가 이이남(‘광화산수도’)을 비롯해 프랑스 출신 제레미 우리(‘Attraction’), 에콰도르 출신 펠릭스 프랭크(‘Ethereal Flux’) 등이 각각 5분 안팎의 디지털 영상을 선보인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그 양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중 프랑스 출신 제레미 우리의 ‘Attraction’, 사진 문화재청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그 양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중 프랑스 출신 제레미 우리의 ‘Attraction’, 사진 문화재청

2019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배경으로 시작된 미디어아트 쇼가 광화문 광장(세종문화회관 포함)에서 열린 적은 있지만 사적(史蹟)으로 관리되는 광화문과 경복궁 담장까지 장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 건축물의 출입구 입면(파사드·facade)에 미디어아트를 덧입힌다는 점에서 ‘미디어 파사드’라고도 불린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을 일종의 스크린으로 쓰기 때문에 대체로 네모반듯한 성냥갑형 건축물이 선호된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경복궁 궁장처럼 문화재로 보호받는 성곽·사찰·유적지도 미디어 파사드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반듯하게 쌓아올린 화강암 석재 유산이 그 자체로 깨끗한 캔버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주원 서울예대 교수)는 설명이다.

수원 화성은 2021년부터 3년 연속 미디어아트 쇼를 선보이며 성곽 야간 관람객을 크게 늘렸다. ‘정조의 꿈, 빛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를 형상화한 쇼는 코로나19 기간인 첫해에 30만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덕분에 화서문 일대 주변 상권 매출도 전년 대비 6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가을엔 세 번째 시즌을 맞아 ‘수원화성 행행(行幸)’이란 제목으로 48만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2021년 수원화성 화서문 일대에서 열린 미디어아트쇼(총감독 이창근).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2021년 수원화성 화서문 일대에서 열린 미디어아트쇼(총감독 이창근).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조선 후기 정조 때인 1794년 착공해 1796년 준공된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를 포함해 익산 미륵사지(백제역사유적지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5개소가 2021년 일제히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코로나19 기간에 야외 문화유산의 접근성을 높이고,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콘텐트를 개발하는 데 각 지자체와 문화재청이 뜻을 같이 하면서다. 올해도 진주성과 고흥 분청사기 요지 등 총 7개소가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게 된다.

2022년 수원화성 화홍문을 배경으로 펼쳐진 미디어아트쇼(총감독 이창근)의 한 장면.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2022년 수원화성 화홍문을 배경으로 펼쳐진 미디어아트쇼(총감독 이창근)의 한 장면.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건축물 외벽을 수놓는 미디어 파사드는 실내 전용 공간에 풀어내는 일반 미디어아트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주변 불빛과 소음을 이겨낼 강력한 광량과 출력을 계산해야 한다. 캔버스 크기도 비교가 안 된다. 2008년 서울시청 구청사를 대상으로 국내 첫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였던 고주원 교수는 “최첨단 기술로 광활한 화면을 채우면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전달력도 갖춰야하는 공공예술적인 쇼”라고 설명했다.

2022 익산 미륵사지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타(총괄디렉터 이창근)에서 미륵사지 두 탑 사이에 첨단 드론 라이트쇼로 재현한 미륵사지 중원 목탑.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2022 익산 미륵사지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타(총괄디렉터 이창근)에서 미륵사지 두 탑 사이에 첨단 드론 라이트쇼로 재현한 미륵사지 중원 목탑.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2022 익산 미륵사지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타(총괄디렉터 이창근)에서 미륵사지 두 탑 사이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미디어아트 쇼를 연출한 모습.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2022 익산 미륵사지 세계유산 미디어아트 페스타(총괄디렉터 이창근)에서 미륵사지 두 탑 사이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미디어아트 쇼를 연출한 모습. 사진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이 때문에 오히려 도심과 떨어진 지방 성곽·사찰 등이 미디어 파사드를 펼치기에 수월할 수 있다. 적막하고 캄캄한 환경에서 주변 조명·소음이 간섭할 여지가 적고, 애초에 이를 보러 나들이한 이들의 집중도도 높은 편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동탑과 서탑 사이 공간 130m에 초대형 이동 스크린 5개를 설치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투사했다. 조명이 꺼지자 순식간에 석탑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장면 등이 수만명 관객의 탄성을 불렀다.

수원화성(2021~22)과 익산 미륵사지(2022) 행사를 기획한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의 이창근 소장은 “문화유산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는 그 유산에 담긴 역사성, 즉 장소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원 화성에서 정조 행차를, 미륵사지에선 백제 무왕의 서동요 설화를 새로운 기술력과 결합해 풀어내는 식이란 의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역사지구 공주 공산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사진 문화재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역사지구 공주 공산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사진 문화재청

해외에서도 고건축물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활발하다. 2022년 프랑스 리옹에선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17세기 수도원 건물 외벽에 미술관 소장 회화들을 인공지능(AI) 영상으로 선보였다. 앞서 2012년엔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 수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성당 외벽에 스페인의 해양개척사를 장대하게 풀어내 열띤 호응을 이끌었다.

이처럼 각 문화유산의 장소성에 초점을 둔 콘텐트는 문화재청이 사전에 행사 심의를 할 때도 주요하게 고려된다. 활용정책과의 최지선 주무관은 “지방 문화유산의 인지도를 높이고 야간에도 볼거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각 지자체의 사업이 창의적이고 의미 있으면 밀어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고주원 교수는 “수백년 된 문화유산에 최첨단 디지털 환영(幻影)이 더해짐으로써 우리 시대에 걸맞은 매력이 창출되는 것”이라면서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것을 중요하게 따지는 젊은 세대의 관광 취향에 맞춰 이 같은 문화유산 미디어아트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역사지구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사진 문화재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역사지구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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