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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명의 대표의 신혼집…대법 "직원 아냐, 갱신요구 불가"

중앙일보

입력

서울 여의도 63아트에서 시민들이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63아트에서 시민들이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중소기업이 직원 숙소용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갱신요구가 가능하지만, 대표가 쓰려고 체결한 계약이라면 갱신요구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9년 12월, 경기도 양평에 본점을 둔 중소기업 A회사의 대표 김모씨는 부동산을 업으로 하는 B회사가 가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를 보증금 2억원에 매달 1500만원을 주고 2년간 쓰기로 계약했다. 법인 명의로 계약하고, 본인이 가서 살았다. 약속한 2년이 다 되기 석 달 전, B회사는 어차피 그쪽은 계약갱신청구권이 없다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김씨는 법인 명의로 계약갱신을 요구하며 나가지 않았다. 이에 B회사가 A회사를 상대로 퇴거 소송을 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 ‘법인’은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직원’ 숙소용으로 쓰는 경우라면 예외로 하도록 2013년에 법을 바꿨다. 영세한 중소기업이 복지 차원에서 소속 직원의 주거안정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표이사도 직원이라 할 수 있을지, 본사와 떨어진 곳의 고가 아파트를 대표가 신혼집으로 쓰는 것까지 보장해줘야 하는지는 이 사건에서 논란이 됐다.

‘대표도 직원인가’ 논란…법원 결론은 “NO”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김선희 판사는 “직원에 대표이사 등 임원도 포함된다”며 김씨가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2심은 이를 뒤집었다. 같은 법원 민사항소 2-1부(부장 박성규·신한미·우인성)는 “직원에 대표이사 등 임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 개정 취지는 원거리에 거주하는 중소기업 직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양평에 본점을 둔 회사 사람이, 인근에 지점이 있지도 않은 서울에, 지나치게 고가 아파트를, 배우자와 함께 사용했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B회사의 청구대로 김씨가 아파트에서 나가야 한다는 판결은 지난달 14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말하는 ‘소속 직원의 주거용’에서 직원의 범위에 “대표이사 또는 사내이사는 제외한다”며 A회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대법원은 직원이냐 아니냐만 중요할 뿐, 2심에서 꾸짖었던 업무관련성·임대료 액수·지리적 근접성은 상관 없다고 했다.

대표 아닌 직원이었다면? “계약갱신요구 가능”

이날 판결은 중소기업이 직원 숙소용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갱신요구도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최초 판례이기도 하다. 2013년 개정을 통해 중소기업도 주택임대차보호법 대상에 들어오긴 했지만, 일부 조항(대항력, 우선변제권)에만 명시돼 있어 계약갱신요구 등 다른 조항도 누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B회사도 “A회사가 대항력은 있을 지 몰라도 계약갱신요구권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앞으로 이 같은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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