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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4.1% 급락…사우디 가격인하에 두달 만에 최대 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2월 원유 수출가격을 대폭 인하하면서 국제유가가 4% 이상 급락했다. 유가 하락세는 국내 물가 안정에 청신호다. 다만 중동 불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해 안심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70.77달러로 전 거래일 종가 대비 3.04달러(4.1%)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16일 4.9% 급락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2월물도 전일 대비 2.64달러(3.4%) 하락한 76.12달러에 마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는 전날 아시아 수출용 원유의 공식 가격을 배럴당 2달러 인하했다. 이번에 발표된 판매가격은 2021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가 지난해 11월 30일 이번 분기 하루 220만배럴을 자발적으로 감산하기로 합의했지만 유가를 끌어올리는데 실패한 뒤 나온 방침이다.

시장은 산유국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모두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라이스퓨처그룹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감산하면서도 가격을 낮추는 것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확실한 경기둔화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ㆍ중 갈등,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에 따른 중동 불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하지만 과거처럼 유가에 큰 충격을 주진 못하고 있다. 미국ㆍ브라질ㆍ가이아나 등 미주대륙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공급이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주 미 산유량은 하루 1320만 배럴로 추산되고 석유ㆍ정제유 재고 역시 1000만 배럴 넘게 늘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은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다.

국제 유가 안정세는 국내 물가 둔화에도 긍정적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월 첫째 주(12월 31일∼1월 4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직전 주 대비 5.5원 하락한 리터당 1577.1원으로 13주째 내림세다. 국제유가 변동은 통상 2주 후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된다. 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류 제품 가격 하락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끌어 내린다.

다만 중동 사태 등으로 향후 유가가 다시 튀어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새해 들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가 홍해에서 민간 상선을 위협ㆍ공격하면서 유가가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세계 2위 해운선사 머스크가 홍해항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는 등 물류 차질이 발생한 탓이다. 이란이 세계 원유의 20%를 수송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가 폭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골드만삭스 석유 연구 책임자 댄 스트루이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 달간 물류 차질을 빚으면 유가는 20% 오르고, 차질이 장기화하면 유가는 두 배로 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환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유가 상승폭을 결정할 것”이라며 “상반기 유가는 배럴당 65~80달러 박스권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컨설팅 업체 래피단 에너지그룹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약 3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지난해 생산 증가분(100만 배럴)에 비하면 둔화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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