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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통행료' 한쪽만 걷는 서울시…'거꾸로 정책' 정부도 걱정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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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분석] 

 15일부터 도심에서 외곽방향으로 나가는 차량은 남산 혼잡통행료가 면제된다. 연합뉴스

15일부터 도심에서 외곽방향으로 나가는 차량은 남산 혼잡통행료가 면제된다. 연합뉴스

 '남산 1·3호 터널을 통해 도심으로 들어올 땐 징수, 나갈 땐 무료.'

 서울시가 오는 15일부터 변경해 시행하는 ‘남산 혼잡통행료’의 골자다. 지난 1996년 11월 도심에 자가용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남산 1·3호 터널에 혼잡통행료(양방향 각각 2000원씩)를 도입한 지 27년여 만에 징수체계가 확 바뀌는 셈이다. 평일(오전 7시~오후 9시)에 남산터널을 통해 도심을 오가던 자가용 운전자라면 종전에 왕복 기준으로 4000원이던 혼잡통행료가 절반인 2000원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징수체계를 변경한 건 지난해 3월 17일부터 2개월간 시행한 혼잡통행료 징수 일시정지 실험이 그 근거다. 서울시는 제도 폐지 및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이 늘어나자 실험에 나섰다. 이진구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은 “처음 1개월은 외곽방향 차량 면제, 이후 1개월은 양방향 모두 면제를 해봤더니 차량이 도심방향으로 진입하면 도로 혼잡이 가중됐지만 진출차량은 상대적으로 혼잡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 결과로 혼잡통행료 징수효과가 분명치 않은 외곽방향은 면제하고, 상대적으로 효과가 뚜렷한 도심 방향은 계속 징수키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교통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이승재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혼잡통행료가 실제로 도로 혼잡 해소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사회적 실험을 하고 이를 분석한 뒤 정책을 수정한 거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별다른 보완책 없이 요금 부담만 사실상 절반으로 낮추게 되면서 자가용 이용을 거꾸로 부추기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승용차 이용을 줄이려는 취지인 혼잡통행료의 효과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 명동 인근에서 벌어진 광역버스 승차 대란에서 보듯이 서울 도심의 교통혼잡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혼잡통행료 부담을 줄여주는 건 자가용 이용을 억제하겠다는 제도 취지와는 반대인 '거꾸로 정책'이 된다”고 비판했다.

6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이 퇴근길 혼잡때문에 긴급 대책을 마련해 운영 중인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이 퇴근길 혼잡때문에 긴급 대책을 마련해 운영 중인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도 “혼잡통행료 제도가 승용차 수요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정책인데 한쪽 방향만 받는 식으로 '반쪽짜리'가 되면 그만큼 수요 관리에 실패하고, 본래 제도의 효과도 달성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진희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교통정책 측면에서 가장 의미 없는 대안을 선택한 것”이라며 “한 방향만 받는 것으로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혼잡통행료 관련 민원을 다소 줄이는 것 말고는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도심으로 진입할 때는 다른 경로를 이용했다가 진출할 때만 남산 1·3호 터널을 무료로 이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동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혼잡통행료를 한 방향으로만 부과하면 대중교통으로의 수요 전환이 아니라 승용차 이용은 그대로인 채 진입경로 변경만 야기할 것 같다”며 “이러면 도심부 혼잡 완화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열린 '남산 혼잡통행료 추진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통행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열린 '남산 혼잡통행료 추진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통행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도심 진입 때만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되 본래의 정책 목표를 고려해 요금을 올리고, 부과 지점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혼잡통행료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 런던은 도심으로 진입하는 거의 모든 도로에서 2만원이 넘는 요금(15파운드)을 징수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스톡홀름(스웨덴) 등도 서울보다 많은 5000원 안팎을 받고 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심방향만 징수할 경우 애초의 정책 목표를 이어가려면 요금 인상과 징수구간 확대가 함께 이뤄졌어야 한다”며 “런던처럼 혼잡통행료 취지를 살려 운전자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 수준으로 요금을 책정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도 “혼잡통행료 부담을 사실상 절반으로 낮추는 건 2019년 서울시가 교통혼잡 완화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도입한 '한양도성 녹색교통진흥지역'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I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남산터널뿐만 아니라 모든 도로를 통해 도심으로 진입하는 승용차에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보완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오거리 인근에서 남산터널의 혼잡통행료 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오거리 인근에서 남산터널의 혼잡통행료 인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심 진출 혼잡통행료 면제와 도심 진입 혼잡통행료 인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바람직한 정책이 된다”며 “현재 서울시의 정책은 도심 혼잡관리가 목표라기보다는 민원을 줄이기 위한 통행료 할인이라는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도심 진출 차량의 혼잡통행료 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황기연 전 한국교통연구원장(KAIST 초빙교수)은 “서울시의 도심지 체계를 고려할 때 구도심과 강남 도심을 연결하는 진출방향도 혼잡통행료를 징수할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도심에선 나오지만, 교통 혼잡이 극심한 강남 도심으로 다시 진입하는 차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승용차 억제를 위해선 양방향 징수가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남산 3호 터널에서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다. 뉴스1

남산 3호 터널에서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다. 뉴스1

 국토교통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관계자는 “실효성 측면에서 보면 도심 진출차량에 혼잡통행료를 면제할 경우 도심 진입차량에는 현재보다 더 높게 요금을 부과해야 할 것”이라며 “서울시가 광역버스는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면서 자가용 이용은 더 부추기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물론 혼잡통행료 징수에 대한 승용차 이용자의 불만과 민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 의식해서 정책의 본래 취지가 위축되는 방향으로 수정돼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도로가 혼잡해지고, 배기가스 배출이 늘어나면 결국 모든 시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실효성 있는 보완책을 서둘러 강구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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