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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채선희의 이코노믹스

학력 저하·대학경쟁력 급락, 인적 자원 혁신 어려워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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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저출산 시대, 위기 빠진 국가 인재 관리

채선희 중앙대 대학원 교육학과 객원교수

채선희 중앙대 대학원 교육학과 객원교수

1990년대 60만명이던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2000년대 40만명으로 급감한 뒤 2017년 30만명, 2025년 22만명, 2072년 16만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2000년생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취업 인구가 대폭 줄어 산업인력의 양적 위기가 시작되고, 이는 향후 50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인적 자원의 질적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데,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양적 위기까지 겹쳐 미래인재 관리의 이중고를 떠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12월 5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PISA는 만15세 학생(중3~고1)의 수학, 읽기, 과학 소양의 성취도와 변화 추이를 국제비교적인 관점에서 평가해, 각국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교육기관이 아닌 경제기구가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은 미래사회는 물적 자원이 아닌 인적 자원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전제 때문이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서
한국 수학 최상위권 비율 급감

선진국 수학경쟁력 강화 기조
정부는 수학교육 난이도 하향

세계 50위권 대학에 한국 없어
서울대, 129위 이름 올렸을 뿐

2028년 수능 ‘미적분II’와 ‘기하’ 제외

전 세계 81개국 69만명이 참여한 PISA 2022의 핵심 평가 영역은 수학이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총 8회 시행된 PISA에서 수학이 핵심 평가영역인 경우는 PISA 2003, 2012, 2022다. 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의 미래가 걸린 과학기술과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영역이므로, 선진국은 수학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수학교육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PISA 2022 수학 결과를 보면, 한국은 ‘평균점수’ 기준 81개국 중 3~7위를 기록했다. PISA 2012 수학에서도 65개국 중 3~5위였다. 그러나 PISA 2012와 2022의 10년간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수학 최상위비율은 10년 동안 30.9%에서 22.9%로 급격히 감소(8.0%)했고, 이는 OECD 평균 감소 폭(3.1%)의 3배 가까이 된다. 같은 기간 동안 최하위비율도 9.1%에서 16.2%로 두 배 가까이(7.1%) 증가했고, 이는 OECD 평균 증가 폭(5.8%)보다 크다. 수학 상위권인 아시아 6개국(싱가포르·대만·홍콩·마카오·일본·한국)과 비교해도, 상위권이 가장 많이 감소하고 하위권이 가장 많이 증가한 국가는 한국이다. 지금까지 PISA에서 항상 상위권의 성취만을 보여주던 한국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소 충격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대한수학회와 수학교육학회, 이공계 교수 등 전문가의 한국 수학교육 약화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에도 수학교육의 난이도를 하향 조절해 왔다. PISA 2012와 2022의 추이 분석 결과는 그동안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수학교육 약화의 심각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정부가 수학난이도를 하향 조정한 것은 사교육비 증가와 수학 흥미도 저하,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 증가 등의 압박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초·중·고 사교육비 2012년 19조원, 2022년 26조원; 이중 수학 사교육비는 약 29%로 추정), ‘수포자’는 계속해서 더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수학 흥미도와 ‘수포자’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난이도 조절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대응해 온 부작용으로 보인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2028 수능개편안’은 수학에서 ‘미적분II’와 ‘기하’를 빼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반인 수학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맞지 않고, 수학 상위권은 줄고 하위권은 늘어나는 PISA 결과를 앞으로 더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수학은 혁신을 일으킬 강력한 도구”

세계 선진국은 AI와 빅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경쟁력의 기초를 수학교육 강화에서 찾고 있다. 영국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수학을 꼽는다. 영국 총리 직속 ‘공학 및 자연과학 연구위원회’는 2018년 발표한 ‘수학의 시대’라는 보고서에서 “21세기 산업은 수학이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도 2019년 앞으로 국가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이 수학이라고 공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의 ‘수리(數理) 자본주의 시대’라는 보고서에는 “AI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loT)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라며 “수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일으킬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선진국은 미래사회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학의 강화’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국내 이슈에 사로잡혀 세계적 흐름에서 이탈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영국의 세계대학평가기관인 QS의 수학과 랭킹을 보면 1위는 MIT, 2위는 케임브리지대, 3위는 스탠퍼드대다. 아시아에서 수학과가 세계 30위에 드는 대학은 싱가포르국립대(13위), 칭화대(26위), 베이징대(27위), 도쿄대(28위), 난양공대(32위)다. 한국은 세계 30위권에 드는 대학이 없고, 50위권에 카이스트(42위)와 서울대(46위)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중국, 일본이 PISA 만15세 수학 영역 랭킹과 수학과 대학 순위에서 모두 우수한 결과를 보인다. 한국은 만15세 수학성취도에서도 수학 분야의 대학경쟁력에서도, 싱가포르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국가에 뒤처지는 실정이다.

빈약한 재정…국내 대학 경쟁력 약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021년 23위, 2022년 27위, 2023년 28위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경쟁력도 2022년 46위, 2023년 49위로 낮아지는 추세다. 대학경쟁력 49위는 조사 대상 64개국 중 하위권으로, 국가경쟁력 28위에 비해 대학경쟁력이 한참 뒤지는 것이다. 그 원인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대학 재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2225달러로 OECD 평균 1만8105달러의 67.5% 수준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의 3분의 2수준인 공교육비로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국제적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한국은 대학에 대한 투자가 대단히 낮고, 이는 다시 대학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교육비는 정부재원과 민간재원을 합한 수치인데, 공교육비의 60~90%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금이 15년간 동결된 데다, 학령인구 감소 등의 구조적 문제로 세계의 대학과 경쟁할 기초체력마저 고갈된 상태다. 중국은 20년 전부터 첨단기술 분야 위주로 ‘세계 일류대학’과 ‘세계 일류학과’를 육성한다는 일명 ‘쌍일류(雙一流) 정책’을 제정해 대학 투자를 늘려왔고, 그 결과가 최근 가시적으로 나오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영국 더타임스가 발표한 ‘2024년도 세계대학랭킹’ 1위는 영국 옥스퍼드대다. 아시아권 대학으로는 칭화대와 베이징대, 싱가포르대가 20위에 포함됐다. 국내 대학은 상위 50위 내에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62위로 작년보다 6단계 하락했다. 미국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전 세계 2165개 대학을 평가해 발표한 2022-2023 세계대학랭킹 1위는 하버드대고, 1~100위에 포함된 아시아 대학은 중국 4개, 홍콩 4개, 싱가포르 2개, 일본 1개다. 국내 대학 중 200위 안에 든 곳은 서울대(129위)뿐이다. 평가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중국 대학의 빠른 성장과 한국 대학의 약세 트렌드를 공통으로 발견하게 된다.

의대 쏠림 속 이공계 공동화 현상 심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과학기술 중심의 초강대국 성장을 목표로 첨단기술 인재 양성에 목숨을 걸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절대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인재의 질을 두 배 이상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지난 10여년 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수학 학력을 비롯해 대학경쟁력 등 많은 교육지표가 하락 추세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우수 인재의 과도한 의대 선호현상은 개개인의 가치관이 결부된 사회적 현상으로 정부가 나서서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의대 쏠림 현상 때문에 도미노식으로 발생하는 이공계 자퇴생의 급증은 이공계 공동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어 의대 편중 현상의 부작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와 학력 저하, 대학경쟁력 하락, 이공계 공동화 현상 등 국가 인재관리에 있어서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이렇게 복잡한 난제가 얽힌 상황에서 과연 미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인재관리가 가능할 것일까. 그 해결의 주체가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OECD가 주는 경고의 시그널은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면 매번 정책도 바뀌어버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의 인재관리는 매우 위태로운 길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채선희 중앙대 대학원 교육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