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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캐나다의 어두운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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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캐나다에 와서 ‘토지 인정(Land Acknowledgement)’이란 걸 처음 접했다. 공공행사를 시작하면서 읽는 선언문 같은 것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지금 몇천년 역사의 이러이러한 선주민 종족 땅에 서 있다.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이 땅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긴다.”

캐니다에는 원주민(퍼스트네이션) 찬양기념물이 도처에 세워져 있고, 정부 기관인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설립돼 원주민의 역사를 공적으로 인정한다. 원주민에 대한 혜택도 여럿이다. 원주민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문양도 법적으로 보호되어 원주민 출신이 아닌 아티스트는 쓰지 못한다. 왜 이렇게 퍼스트네이션을 찬양하는지 처음에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메리카 편지

아메리카 편지

그런데 2022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를 방문해 카톨릭교회가 위탁운영한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 19세기 말부터 약 150년간 정부에서 운영했던 139개의 원주민 기숙학교는 ‘미개한’ 원주민을 백인 문화와 사회에 동화시킨다는 구실로, 약 15만 명의 어린이들을 가족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수용하고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혀에 바늘을 꽂는 참혹한 처벌과 성폭행 등의 행위도 일삼았다. 기숙학교에서 질병·학대·방치로 인해 죽은 원주민 아동 숫자가 지금까지 4000여 명이 확인됐다. 이는 원주민 학대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캐나다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뒤늦게라도 반성하고 보상하려는 것인데, 기숙학교의 원형모델을 제공한 미국은 보상은커녕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 근래의 BLM(Black Lives Matter) 운동만 봐도 알 수 있듯 미국의 인종차별 이슈는 노예제도의 후유증으로 인해 흑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앞으로 캐나다를 본보기로 삼아 원주민 학대 역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행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뒷전으로 미룰지 궁금하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