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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로 태어났쓰! 환장하지~" 요즘 지역축제 점령한 '수상한 8공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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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로 구성된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가 지난 3일 발표회를 통해 두 달간 연습한 랩 실력을 뽐낸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로 구성된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가 지난 3일 발표회를 통해 두 달간 연습한 랩 실력을 뽐낸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나 어릴 적 친구들은 학교에 다녔지. 나 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지. 설거지해! 애 보고 해! 내 할 일은 그거지.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로 태어났쓰! 오빠들은 모두 공부를 시켰쓰!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했쓰!”

평균 연령 85세인 힙합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내뱉는 랩 가사는 거침없다. 지난해 8월 31일 정식 데뷔한 이들은 지역 각종 축제와 행사에서 랩과 춤을 선보이며 연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회원 수 150명의 팬클럽도 있다. 주로 아들·딸·며느리·손주·주민으로 이뤄진 팬클럽에는 김재욱 칠곡군수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니와 칠공주’ 공연에 반한 어르신들

리더 박점순(81) 할머니 등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로 구성된 ‘수니와 칠공주’는 삐뚤빼뚤 쓴 손글씨로 시집을 발간하거나, 대통령 연하장에 쓰인 ‘칠곡할매글꼴’을 만드는 등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모았다.

칠곡 할매들은 새해에도 관심의 중심에 섰다. ‘수니와 칠공주’ 활동에서 영감을 얻은 경북 칠곡군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전국 최초로 랩을 활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다. 칠곡 할매들이 일으킨 나비효과인 셈이다.

칠곡군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 어르신들은 지난 3일 열린 발표회에서 두 달간 연습한 랩 실력을 뽐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구성된 평균 연령 88세의 혼성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 소속이다.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칠곡할매'들이 래퍼로 변신했다.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칠곡할매'들이 래퍼로 변신했다.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칠곡군

멤버는 할머니 10명과 할아버지 3명 등 13명이다. 이날 그룹 리더인 송석준(95) 어르신은 청년 못지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랩을 선창했고, 다른 어르신들도 따라 부르며 비트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도 랩 하고 싶다” 보호센터에 건의  

어르신들이 랩 삼매경에 빠져든 건 8인조 칠곡할매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로부터 비롯됐다.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수니와 칠공주는 지난해 10월 센터를 방문해 어르신에게 랩을 선보였다. 어르신들은 수니와 칠공주가 부른 랩을 따라 불렀다. 이어 센터에 배우고 싶다고 건의했다.

센터는 반복되는 가사를 암기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문의를 통해 조언을 구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이호원 교수는 “노래 가사를 외우고 가볍게 춤을 추면서 말을 하듯 노래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젊은 세대와 소통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노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랩이 많은 어르신에게 보급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랩, 치매 예방에 효과” 조언

이처럼 젊은 층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랩이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답변을 받자 래퍼 그룹을 만들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의상과 모자를 비롯해 액세서리도 마련하고, 랩에 소질 있는 직원을 선생님으로 모시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월 12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 할머니들을 초청해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칠곡할매글꼴은 경북 칠곡군이 어르신 대상으로 운영하는 성인문예교실에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윤 대통령 부부는 새해 연하장을 할머니의 서체로 제작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월 12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 할머니들을 초청해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칠곡할매글꼴은 경북 칠곡군이 어르신 대상으로 운영하는 성인문예교실에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윤 대통령 부부는 새해 연하장을 할머니의 서체로 제작했다. 뉴스1

어르신들이 랩에 좋은 반응을 보이자 올해부터 정규 교육 과정에 랩을 채택해 센터를 이용 중인 모든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 차례 랩을 배우게 됐다.

장복순 센터장은 “랩으로 몸과 마음이 젊어진 것 같다며 계속 랩을 하고 싶다는 어르신의 건의가 이어지면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어르신들이 쉽게 배우고 따라 할 수 있는 랩 곡을 많이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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