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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면접관에 잘 보여야죠"…코칭학원 다니는 취준생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취업 준비를 하는 이화여대 학생이 지난달 29일 이화여대 ECC 내일라운지에서 AI면접을 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취업 준비를 하는 이화여대 학생이 지난달 29일 이화여대 ECC 내일라운지에서 AI면접을 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취업준비생 김수연(24)씨는 지난해 마케팅·기획 직무로 대기업 아홉 곳에 지원했다. 이 중 다섯 곳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지만, 모두 인공지능(AI) 역량검사에서 낙방했다. AI 면접관의 질문에 성심껏 답했지만, 왜 채용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김씨는 AI 역량검사에 대비하는 학원이 유행이라는 말을 듣고 큰맘 먹고 문을 두드렸지만, 많은 비용 때문에 결국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기계가 과연 정확하게 평가할지 의문"이라며 "상황이나 운에 따라 합·불합격 여부가 갈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AI 면접(역량검사)을 실시하는 기업이 늘면서 관련 사교육도 성행하고 있다. 각종 취업 컨설팅 업체 홈페이지에 따르면, 1 대 1로 AI 면접을 코칭해준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한 업체는 면접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4시간 분량의 인터넷 강의를 7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전문 강사에게 90분 동안 1대1 집중 과외를 받는 수업은 20만원에 달했다.

AI 역량검사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을 활용해서 진행한다. AI 면접은 화면이나 음성으로 질문이 뜨면 카메라를 보고 마이크에 답하는 식이다. 2018년 공기업 채용 비리 등이 연이어 터지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대비하는 취업준비생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면접관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합격한 이유를 더 알기 어렵고, 이 때문에 불안해진 취업준비생은 '팁'을 알려준다고 홍보하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취준생들 사이에선 눈동자 떨림이나 카메라 각도, 고개 흔들림 등이 점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낭설까지 돈다.

포털사이트에서 'AI 역량검사'와 'AI 면접' 관련 홍보 블로그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네이버 캡처

포털사이트에서 'AI 역량검사'와 'AI 면접' 관련 홍보 블로그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네이버 캡처

특히 AI 면접 유형 중 하나인 '상황 질문'은 각기 다른 질문에 같은 에피소드로 답해도 모두 통과하는 등 기준이 모호하다. 취준생 박모(24)씨는 "AI면접의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떨어져도 다음 면접에 대비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앞으로도 비대면·AI 면접 채용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어서 관련 사교육 시장이 더욱 과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22년 채용사이트 사람인이 386개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채용 전형을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비율은 45.1%에 달했다. 현재 비대면 전형을 운영하는 기업의 71.6%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비대면 전형을 확대 또는 유지하겠다고 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AI 면접으로 비용도 줄이고 회사 인재상에 맞는 지원자를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 역량검사 사교육을 받는다고 곧바로 취업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AI 역량검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마이다스인은 "이 프로그램은 학습효과가 없기 때문에 사교육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명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AI 면접 결과에만 맞춰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은 없다"며 "단기 대비 특강 등을 듣는다고 당락이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청년센터 영등포 오랑 내 AI 면접 체험 공간에서 면접 시연을 하는 모습. 사진 영등포구 제공

서울청년센터 영등포 오랑 내 AI 면접 체험 공간에서 면접 시연을 하는 모습. 사진 영등포구 제공

전문가들은 사교육 대신 지방자치단체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무료 AI 면접 프로그램 등을 충분히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서울시·강남구·영등포구 등 일부 지자체에선 시민들에게 AI 면접을 체험하게 하고 평가결과도 알려준다. 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서울시립대 등은 AI 면접 관련 강의를 열거나 AI·비대면 채용에 특화된 강사를 초빙한다.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최모(29)씨는 "학교에서 무료로 모의 AI면접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줬다"며 "별도의 학원비를 들이지 않고 실제 답변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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