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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만으로 기후위기 못 막아…소비자 참여 유도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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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15면

정내권 초대 기후변화대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정내권 초대 기후변화대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세계는 지금 집단 자살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사회에 던진 이 같은 경고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평균기온이 13.7도로 1973년 기상청 관측 이후 반세기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날과 낮은 날의 편차가 20.6도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극단적인 이상기후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지난 연말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도 큰 기대를 모았지만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이에 대해 정내권(70) 초대 기후변화대사는 “지난 30년간 각종 서약과 합의가 나왔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된 처방전도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 지구환경 외교의 산증인”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후변화 전문가로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그를 만나 뭐가 문제고 해법은 뭔지 들어봤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홍수·가뭄·폭염·한파와 대형 산불의 일상화는 이미 세계적 추세다. 북극에선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더욱 심각한 건 동토층인 시베리아 툰드라가 녹으면서 땅속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메탄가스가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20~30배 더 치명적이다. 글로벌 워밍(warming)을 넘어 글로벌 보일링(boiling) 단계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모두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겼지만 어느새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가 돼버렸다.”
 하지만 국제사회 논의는 여전히 겉돌고 있고 온실가스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기후변화협정에도 불이행에 따른 처벌 조항이 없다. 정치적·경제적 이유가 중첩돼 있다. 청정에너지 전환은 비용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 만큼 표심에 민감한 각국 지도자들이 공론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국제 가격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도입이 결코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 해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보여주기식 선언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 대사가 기후변화 문제에 천착한 건 35년 전부터다. “외교부 서기관 때인 1989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됐는데 내용을 보니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경제적 피해를 막으려면 당장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지면서 초대 과장을 맡게 됐다.” 녹색성장도 그가 처음 주창한 슬로건이었다. “유엔에서 협상하다 보니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온실가스 감축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더라. 고민 끝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오히려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을 하게 됐다.”

‘고통 분담이 아니라 기회 분담의 계기로 삼자’는 발상의 전환은 여러 국가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결국 2005년 환경개발장관회의 각료 선언에 녹색성장이 처음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후엔 초대 기후변화대사에 임명됐다. 유엔 기후변화특사를 지낸 한승수 총리가 “녹색성장 아이디어도 냈으니 책임지고 실천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에게 대사직을 맡겼고, MB도 그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녹색성장을 국가 미래 전략으로 선포하며 힘을 실어줬다.

2년간 대사를 지낸 뒤 유엔으로 건너간 그는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 환경개발국장과 유엔 사무총장 기후변화 수석자문관 등을 맡으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2019년부터는 에너지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글로벌 에너지 프라이즈’ 심사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럼에도 해법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온실가스 감축의 주체를 정부와 기업에 국한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이젠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에 눈을 돌릴 때다. 특히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요즘 젊은 세대 소비자들은 기후변화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들에게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다. 독일 고속열차가 좋은 사례다. 재생에너지 전기를 이용하고 싶은 승객에게 일반 승차권보다 높은 가격의 ‘녹색 승차권’을 구매해 기후 대책에 동참할 기회를 제공하자 소비자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정 대사는 “다국적기업들도 최근 젊은 소비자들의 이런 적극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실제로 ‘카본 프리’ 제품이라고 홍보하면 훨씬 잘 팔릴 것이란 판단하에 대안을 강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 정부와 기업도 소비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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