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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맥·인맥으로 얽힌 ‘패거리’ 정치 비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2호 22면

옥스퍼드 초엘리트

옥스퍼드 초엘리트

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최영우 옮김
글항아리

영국은 2010년 이래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등 다섯 명의 옥스퍼드대 출신 보수당 정치인이 연속해서 총리를 맡고 있다. 또래집단의 0.5%도 안 되는 같은 세대의 동일 대학 출신이 지속해서 정부를 장악하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대학 출신의 영국 언론인인 지은이는 그 이유와 폐해, 그리고 대안을 비판적·객관적으로 탐색한다. 수많은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려면 성적은 기본이고, 1박 2일의 교수 압박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1980년대까지는 대학에 전화할 수 있는 부모가 있으면 성적이 부족해도 입학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그런 부모 중에는 능력주의라는 말을 만들고 방통통신대를 설립하며 공정을 강조했던 좌파 정치 지도자도 포함됐다.

입학 뒤에는 매주 지도교수와 일대일로 만나 문답식으로 배우는 튜토리얼(영국 고등교육의 특징이다)을 하는 것은 물론, 같은 단과대학 학생 전원이 정장 차림에 검은 가운을 걸치고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정찬도 함께한다. 수시로 세계적인 유명인사의 초청 강연도 들을 수 있다. 토론 클럽인 옥스퍼드유니언 회원이 되면 연설 능력을 키우고 야심 많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학생 정치를 경험할 수 있다.

1980년대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옥스퍼드에 다니며 동일한 토론·사고·의사결정 방식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정치적 야심을 키워온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상당한 배경, 얕은 지식, 뛰어난 토론 능력, 지배계급의 말투, 규칙을 무시하는 악동 짓, 헌신·봉사·희생을 모르고 성장했다는 세대적 특성을 공유했다.

지은이는 이렇게 학맥과 인맥, 경험과 기회를 공유한 패거리 정치인이 정계에 진출해 추진한 정책이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라고 지적한다. 정치적 야망과 특권의식으로 가득한 이들이 공동체의 미래보다 인기영합을 위해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갔다는 비판이다. 같은 배경과 경험을 가진 패거리가 의회와 정부를 장악하다 보니 득표만 노린 근시안적 정책과 ‘우리끼리’의 이기적 정치공학만 추구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거인 정치인을 이 시대에 찾기 힘든 이유다.

지은이는 이러한 폐해를 바탕으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프랑스의 정치·행정 엘리트 교육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가 지난 2022년 1월 1일 문을 닫은 것을 사례로 제시한다.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을 포함해 네 명의 대통령과 두 명의 총리를 배출한 ENA는 ‘더 능력주의적이고, 보다 효율적이며, 민주주의에 더 많이 봉사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으로 개편됐다.

지은이는 옥스퍼드가 지배계급의 기득권 확대·재생산 과정이 되지 않으려면 부모의 출신과 배경이 입학 성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학부 과정을 폐지하고 능력 중심의 대학원 교육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제 Chums: How a Tiny Caste of Oxford Tories Took Over the UK.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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