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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두 달…주가 상승은 미미, 변동성 되레 커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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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08면

공매도 규제 성적표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공매도 일시 금지 시점과 관련해 부작용 해소 시스템 구축 전까지 (공매도를) 계속 금지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원한다면 어떤 문제라도 즉각 해결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올해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공매도로 인해 국내 증시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고, 변동성도 크다며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 공매도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가 주가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이 확산하자 내놓은 조치다.

공매도 금지 이후 외국인 수급 되레 증가
공매도 전면 금지는 ‘공정한 가격’ ‘증시 변동성 축소’를 목표로 했지만, 지난 두 달간 코스피·코스닥은 정부와 개인 투자자의 바람과 달리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주가가 소폭 오른 것은 공매도 금지 효과가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봇(통화정책 전환) 기대감 등 외부 요인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변동성 역시 되레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매도 금지 첫날 증시에는 개인 투자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지난해 11월 6일 코스피는 개장과 동시에 치솟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15분께 코스닥은 5% 넘게 올라 사이드카(주가 변동성이 커지면 일시 거래 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이날 코스피는 역대 최대 상승 폭인 134.03포인트(5.66%) 올라 2500선을 단숨에 돌파(2502.37)했고, 코스닥은 7.34%(57.4포인트) 오른 839.45에 장을 마쳤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에 대한 흥분과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코스피는 다음날은 7일 전날 상승분의 절반을 반납했고, 이후 11월 말까지 2500선에서 횡보했다. 코스닥 또한 6일 이후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후 주가는 연말 산타 랠리를 펼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앉아 5일 코스피는 2578.08에, 코스닥은 878.33에 장을 마쳤다. 공매도 금지 두 달간 코스피는 8.86%, 코스닥은 12.31% 상승하긴 했지만, 금지 첫날인 6일 하루 상승세가 코스피는 5%, 코스닥은 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달간 증시는 사실상 3~5% 오르는데 그친 셈이다. 상승 폭은 ‘공정한 가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금지 첫날이었던 지난해 11월 6일 숏커버링(공매도 잔고 청산) 물량이 다수 유입됐지만 하루 만에 잔고 감소율이 1%대로 줄었다”며 “코로나19 때보다 (공매도 금지) 효과가 약했고, 주가는 일주일 만에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개인 투자자들은 그간 공매도가 주가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공매도와 주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코스피, 코스닥 공매도 잔고 주수는 각각 1억5367만주, 1억3083만주로 공매도 금지 직전 거래일인 지난해 11월 3일과 비교해 41.2%, 27.83% 줄었다. 하지만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흉이라던 2차전지·바이오주는 공매도 금지 이후 반짝 상승한 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28일 기준 코스닥 공매도잔고비율 상위 10개 종목(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휴마시스·다원시스·엔케이맥스·더네이쳐홀딩스·에스티큐브·서진시스템·대주전자재료) 대부분은 6일 대비 적게는 2%에서 많게는 23%가량 하락했다.

특히 대표적인 ‘공매도 피해주’로 불렸던 에코프로는 이 기간 공매도 잔고는 17%가량 줄었지만 주가는 1.57% 오르는 데 그쳤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공매도는 주가의 하락 속도에 영향을 미쳐 기업 가치를 신속하게 반영할 뿐, 주가의 등락을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다”라며 “주가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공매도를 ‘악’으로 몰아가는 오해에서 비롯된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3월 공매도가 쏠렸던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에코프로 등 2차전지주의 몸값이 이후 치솟은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종목은 공매도 잔고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었지만 한 달여 만에 주가가 적게는 9%에서 많게는 81%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 이후에는 오르기는커녕 되레 내린 종목이 많다. 개인 투자자의 기대는 빗나간 셈이다.

빗나간 예상은 주가뿐이 아니다. 공매도 찬성론자들은 공매도를 금지하면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떠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두 달 주가를 떠받쳤던 일등공신은 외국인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3조3000억원을 순매수했다. 10월까지 순매도세를 보였던 외국인이 공매도 금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로 몰려온 것이다. 11월 외국인의 순매수액도 1월 6조1000억원 이후 가장 많았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 외국인 투자자 등록 제도 폐지, 배당 절차 개선,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 등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외국인 수급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전했다.

잇단 부양책, 증시 경쟁력 떨어트릴 수도
여기에 정부의 규제 완화나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기대감이 이 기간 주가의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 인하에 돌입한 것으로 예상하면서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늘었다”면서 “코로나19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시그널이 보이지도 않아 공매도 이슈가 크게 지속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 한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피는 지난달 14일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퍼지면서 이후 최장기간인 5거래일(12월 14일~12월 20일) 연속 상승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내세웠던 ‘변동성 축소’ 효과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일부터 이달 5일까지 코스피·코스닥 변동률은 각각 0.83%, 1.16%였다. 공매도가 허용됐던 2022년 11월 7일부터 2023년 1월 6일까지 변동률은 코스피 0.89%, 코스닥 1.13%였다.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2022년 말은 연준이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던 시기(통상 주식시장 변동성 상승)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매도 금지 이후 시장 변동성은 오히려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 증가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즉, 신용거래융자가 최근 두 달간 급증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국내 증시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6조8700억원으로 8월 20조5000억원대를 기록한 후 지속해서 감소해 왔다. 하지만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자 신용융자잔고는 빠르게 늘어 지난해 11월 9일 17조원대로 올라섰고, 4일에는 17조5636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매도 금지 기한을 늘리려는 것은 여전히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공매도는 증권사와 같은 유동성공급자(LP)만 가능한데, 개인 투자자들은 이들이 여전히 불법 공매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6개 LP 증권사를 점검한 결과 불법 공매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총선을 의식한 정부의 금융투자 규제 완화와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맞물려 상반기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공매도 금지를 시작으로 연일 주가 부양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주식 양도소득세 납부 여부를 가리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했고, 지난 2일에는 오는 2025년 시행을 앞두고 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증시 부양책이 오히려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키워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윤 대통령이 2일 한국거래소를 찾아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논란을 사고 있다. 금투세 폐지는 정부의 국정과제인 만큼 폐지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지만, 법을 개정해야 해 실제 폐지로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자감세를 이유로 금투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법인세율 인하 등은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게다가 증시에서는 금투세 폐지가 증시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금투세 폐지 자체가 공약이었던 만큼 기대감이 시장에 선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 완화로 일시적인 주가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처럼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잦은 정책 변화로 시장의 혼란만 커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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