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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올린 펩시, 매대서 쫓겨났다…佛 열광한 까르푸 극약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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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값은 그대로인데 용량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식음료 업계의 가격 정책이 논란인 가운데, 글로벌 대형마트가 ‘가격 인상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펩시·도리토스 등을 매대에서 퇴출하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까르푸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 매장에서 레이즈·도리토스·립톤·펩시·세븐업 등 펩시코 주요 브랜드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다”며 “펩시코의 용납할 수 없는 가격 인상이 이유”라고 보도했다. 까르푸는 매장 선반에 메모를 부착해 퇴출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식료품점에 펩시 제품이 진열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식료품점에 펩시 제품이 진열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투자회사 번스타인은 까르푸의 펩시코 퇴출 대상 4개국에서 펩시코 글로벌 매출의 0.25%가 나온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1~9월 펩시코의 유럽 지역 매출은 90억 달러(11조8400억원)로 전체의 14%를 차지한다. 펩시코 측은 “수개월 간 까르푸와 얘기해왔으며, 제품이 다시 판매될 수 있게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펩시코는 코로나19가 닥친 2년 동안 급격하게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다음달 있을 실적발표 전망도 긍정적이다. 전년 대비 매출은 10%, 이익은 13% 성장했을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한다.

까르푸는 4개월 전부터 슈링크플레이션 제품들에 안내문을 붙여 제조사들의 눈속임 가격 인상을 경고해왔다. WSJ는 “식료품 판매업체와 제조업체가 공개적으로 대치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졌다”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까르푸는 가격 문제로 식품 회사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판매업체”라며 “이런 까르푸의 결정에 소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소매·제조기업 75개 경영진과 가격 동결·인하에 대해 논의했으며 지난 6월엔 네슬레와 유니레버·펩시코 등 다국적 기업들이 이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韓마트도 용량 정보 제공한다지만…
국내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까르푸의 대응 방식에 대해 “슈링크플레이션 고지 등 유럽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정서적 문제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국내에 맞는 적절한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는 9월부터 동일한 가격에 상품 용량이 변경됐을 때 이를 제품 앞에 별도로 표시하기로 했다. 감자칩 매대에 ‘#SHRINKFLATION’이란 표시가 붙어 있다. 사진 까르푸 링크드인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는 9월부터 동일한 가격에 상품 용량이 변경됐을 때 이를 제품 앞에 별도로 표시하기로 했다. 감자칩 매대에 ‘#SHRINKFLATION’이란 표시가 붙어 있다. 사진 까르푸 링크드인

이제까지 국내 마트·백화점 등 판매업체들은 슈링크플레이션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정부와 제조업체가 주체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제조업체에 마트 자체 지침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갑질’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정부가 이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이후인 지난달 20일 한국소비자원과 상품 용량 정보 제공 등에 대한 자율협약을 맺었다. 협약 대상 업체는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현대백화점·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컬리·쿠팡 등 8개다.

“마트 온라인몰에서도 안내 필요” 

협약에 따라 판매업체들은 판매하는 모든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의 용량 정보를 분기별로 소비자원에 제공한다. 소비자원이 이를 분석해 용량이 달라진 상품에 대한 안내문을 매장에 한 달 동안 게시할 방침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다만 어떤 형식으로 안내문을 만들지, 어디에 게시할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추가 협의를 거쳐 이르면 1분기에 시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매장에서 소비자 눈에 잘 보이게 게시해야 한다”며 “온라인몰에서도 단위 가격 형식이 아닌 어떻게 변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들이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은 자율협약 대상이 아니어서, 온라인몰에서 용량-가격 정보 안내 방식은 업체별로 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온라인 안내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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