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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구원투수' 최창원, 쇄신 칼뺐다 "작은 것부터 우선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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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SK그룹이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조이고 나섰다. 각 계열사별로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은 소규모 사업들부터 하나씩 정리하겠다는 의지다. 지난 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느슨해진 거문고는 줄을 풀어내어 다시 팽팽하게 고쳐 매야 바른 음을 낼 수 있다”며 언급한 ‘해현경장’(解弦更張) 경영이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인 최창원 부회장이 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뉴시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뉴시스

SK네트웍스의 자회사인 SK매직은 3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SK매직의 가스레인지‧전자레인지·전기오븐 등 3개 품목의 제조·판매·유통 영업권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경동나비엔을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예상 양도가액은 400억원이다.

재계에선 “빠르게, 확실히 변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돌연사)를 맞을 수 있다”는 최 회장의 경고가 구체화하고 있다고 본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대적인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최 부회장에게 SK수펙스 의장을 맡기고 ‘부회장 4인방’으로 불리던 조대식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SK 부회장), 장동현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 부회장(SK 부회장) 등은 후방으로 물렸다. 이들은 2016년 부회장에 선임된 후 그룹을 이끈 주축이었다.

최창원, “합리적 구조조정 달인” 

최 회장이 SK의 구원투수로 부른 사촌동생 최 부회장은 사업 재편과 전환의 전문가로 꼽힌다.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막내 아들로, 최 부회장은 1994년 SK케미칼(옛 선경인더스트리) 과장으로 입사해 2년 만인 1996년 SK그룹 최초로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2006년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자로서 색채를 드러냈다. 당시 매출의 절반이던 섬유 사업을 과감히 접고 바이오‧헬스케어 등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이를 현재 SK디스커버리의 핵심 먹거리로 키워냈다. 익명을 요구한 SK 관계자는 “당시 최 회장이 최 부회장의 구조조정 보고서를 흘낏 보고는 ‘알아서 하라’고 할 정도로 둘 사이의 신뢰가 두텁고, 최 부회장은 피 흘리지 않는 합리적 구조조정의 달인으로 통한다”라고 전했다.

SK는 1998년 9월 최 회장이 38세에 회장을 맡은 후 지난 25년간 두 번의 큰 구조조정을 겪었다. 200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기까지를 첫번째로, 2016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두 번째로 본다. 재계에선 이번이 세 번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왼쪽부터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 최태원 SK 회장,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SK

왼쪽부터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 최태원 SK 회장,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SK

지난해 12월 7일 수펙스협의회 의장에 앉은 최 부회장은 이미 정리할 사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당장 큰 사업에 손을 댈 수는 없지만, 그간 공격적인 M&A와 영역 확장 과정에서 우후죽순 쌓여온 작은 사업들부터 정리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 물망에 오른 첫 번째 대상은 SK스퀘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2021년 11월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한 정보·통신기술(ICT) 투자 전문 중간 지주사다. SK쉴더스, 원스토어, 11번가, 티맵모빌리티, 드림어스컴퍼니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박정호 부회장 주도로 SK그룹 M&A의 선봉에 있었지만, 투자 환경 악화로 최근 고전하고 있다.

SK스퀘어, 구조조정 첫 타자 

SK스퀘어는 지난해 SK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 폭으로 매출이 줄었다. 2022년 3분기 누적 매출 4조937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3분기엔 758억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SK스퀘어가 SK하이닉스의 지분 20.1%를 보유(지난해 6월 말 기준)한 최대주주인 만큼 SK하이닉스의 손실이 반영되긴 했지만, 다른 자회사들도 성적표가 좋지 않다.

박성하 SK스퀘어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않은 성장은 자본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우리 ICT 포트폴리오도 손익 개선 및 수익모델 변화 등 체질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SK스퀘어는 이미 지난해부터 사업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트인 웨이브를 CJ ENM의 티빙과 합병하기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앞서 지난해 11월엔 11번가의 지분(18.18%)에 대한 콜옵션(주식을 되살 수 있는 권리)을 포기하며 매각에 나섰다. 앞서 지난해 7월엔 SK쉴더스의 지분을 8600억원에 글로벌 투자사인 EQT파트너스에 경영권과 함께 넘겼다. SK의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매각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지분 교환이나 부문 매각 등의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매직도 일부 품목에 대한 영업권만 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한편 지난해 말 인사에서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은 부회장 4인방은 사실상 퇴각 수순을 밟는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우를 위해 퇴임 전까지 기존 직함을 유지하는 정도의 의미이고, 현업에선 이미 손을 뗐다”라고 말했다. 이미 부회장들 가운데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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