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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재명 피습에 음모론·혐오 발언 봇물…테러만큼 부끄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자작극’‘정권 사주’ 등 배후 놓고 루머 난무

정치권, 증오 선동 멈추고 방지 대책 강화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으로 신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두고 급박하게 돌아가던 여야의 공식 일정이 전면 중단·축소됐다. 60대 피의자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혐오와 극단의 정치가 초래한 최악의 테러임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양극단으로 쪼개진 팬덤 정치에 기생해 온 정치권과 강성 지지층의 행태는 달라질 조짐이 없다.

유튜브 공간엔 지난 2일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음모론·배후설 등 억측과 혐오 발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가짜 칼로 연출한 야당의 자작극’ ‘정권의 사주로 벌어진 일’이란 주장부터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이송이나 재판 지연과 관련해 온갖 루머가 판치고 있다. 피의자의 신원을 놓고도 ‘민주당 당적이다’ ‘과거 국민의힘 당원이었는데 최근 민주당원이 됐다’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넘쳐난다. 게다가 일부 정치인은 이런 음모론을 자제시키기는커녕 그에 편승해 혐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경 전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란 글을 SNS에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이 대표가 피습됐다는 취지의 주장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는 궤변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여당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긴 마찬가지다. 2일 대전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년인사회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대표 피습을 언급하자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이 대표 측) 쇼입니다”란 말까지 나와 한 위원장이 손을 들어 제지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좌우 세력이 상대방 암살까지 서슴지 않으며 극렬하게 대립하던 해방 정국으로 정치 시계를 후퇴시켰단 말까지 나오는 참담한 테러다. 이를 총선에 연결, 악용하려는 행태는 절대 용납돼선 안 된다.

테러범이 노리는 진짜 목적은 테러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의 혼란과 분열이다. 정치적 입장과 진영은 다르더라도 테러는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대화로 정치를 풀어가야만 근절될 수 있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팽팽한 각축이 예상돼 안 그래도 극단과 혐오의 편가르기가 기승을 부리던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유권자인 국민의 냉정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강성 지지층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의 음모론과 혐오 발언에는 귀를 닫고, 후보의 인품과 정책만을 잣대로 총선에서 표를 행사해야 테러의 온상인 극단·혐오의 정치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각종 음모론과 억측을 잠재우기 위해선 수사 당국의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도 절실하다. 범행 동기는 물론 배후 여부까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 공개해야 한다. 총선 국면에서 유사한 테러가 재발하지 않도록 주요 정치인들의 경호를 강화하는 것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