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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낡은 국토 관리의 틀, 확 바꾸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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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채미옥 전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

채미옥 전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

산불·홍수·산사태·지진 등 자연재난이 예측 불가 형태로 발생하고, 이상 난동과 이상 한파가 반복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재난뿐 아니라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저성장과 양극화, 4차산업 혁명 등 사회·경제 여건 변화도 급격하다. 이런 문제는 국토를 이용하고 관리하는 정책과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기후 위기와 인구 감소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전국에서 도시재생 등 기존 개발지를 재활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의 국토 관리체계는 도시 용지 공급 확대와 토지 이용의 경제적 효율성에 치중한 1990년대 이후의 국토 관리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땅값이 싼 하천부지와 구릉지를 개발하느라 물길을 막고 숲을 훼손해 홍수와 산사태 피해를 키우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후·인구위기, 국토문제와 직결
개발시대 국토관리, 부작용 많아
효율성 높이며 보존도 추구해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1990년대 말 준농림지역의 난개발이 사회 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2002년 계획적 국토 관리 차원에서 도입한 관리지역의 44% 이상이 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되면서 도입 취지가 희석됐다. 계획관리지역은 자연녹지지역과 함께 개발도 하면서 보전도 할 수 있는 ‘도시 개발 예비지’ 성격이 강하다. 이 두 지역을 합치면 국토의 20%가 넘는다. 이는 지금 도시 용지로 사용하고 있는 면적(국토의 약 6%)의 3배가 넘는다.

난개발 방지를 위해 성장관리계획구역이 도입됐지만, 도시관리계획 위에 중복적으로 수립되는 계획이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도시관리계획의 용도지역 구분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 발생 온실가스의 24.7%가 건물 부문에서 발생하지만, 건축물의 약 40%가 자연녹지지역과 관리지역에 분포한다. 공장의 41%가 공업지역이 아닌 계획관리지역에 있다. 전체 주택의 28%와 각종 시설물이 완충공간 없이 계획관리지역 내 농지와 임야에 산발적으로 혼재해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농지와 산지는 더 이상 미개발지가 아니다. 숲 1ha는 평균 10.8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농지는 홍수 발생 시에 물을 담아놓는 ‘논 댐’ 역할도 한다. 국토 관리의 기본 틀을 국토 전반의 자연성을 존중하고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계획관리지역과 자연녹지지역 구분을 개발할 지역과 보전할 용도지역으로 세분해 토지 이용의 효율을 높이면서도 자연재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농경지와 구릉지에 산재한 축사·주택·공장 등의 입지를 용도별로 집단화해 이용·개발의 편의성을 높이고, 산지와 농지가 파편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는 자연 지형과 실질적인 산림 보전 면적을 넓히는 효과가 있고, 탄소 흡수원 확대를 위해 새로 나무를 심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토지 규제 완화의 패러다임도 국토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규제 완화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첨단산업단지 및 주택단지 건설 등 새로운 개발 용지 수요를 신속하게 충족해주면서 이를 난개발로 훼손된 구릉지 등을 회복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토지 이용 규제 완화 신청이 들어오면 해당 개발에 필요한 면적뿐 아니라 난개발된 인근 지역의 주택·공장 등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면적에 대해 추가로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용지 조성 면적 추가에 따른 개발자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공공이 보유한 국·공유지 대토(代土) 보상, 토지 매수 지원, 관련 부처 합동심의, 부담금 감면 및 기부채납 축소 등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지원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적으로 입지한 주택·공장 등이 새로 계획적으로 조성한 지역으로 입주하도록 제도적 당근과 채찍도 필요하다. 추가로 조성한 단지의 토지나 주택으로 교환해주거나 조성원가로 주고, 취득세와 기존 토지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도 검토해야 한다. 반면 외부에 개별적으로 입지한 시설에는 농지와 산림 훼손 관련 각종 부담금과 폐수 배출 등 환경 관리 규정을 강화해 비용 부담을 높여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국토 관리 및 국토 이용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과 자연재해 대응력을 높이는 정책은 모순되지 않는다. 단순히 취사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해 공존을 모색해야 할 필수 과제이기에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절실하다.

채미옥 전 한국감정원·부동산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