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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응교의 가장자리

장발장을 기다리는 새해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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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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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파리 마레 지구에는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집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몇 분 걸어 보주 광장에 있는 집에 들어가면 방마다 중국 도자기로 은은하다. 이 엄청난 부자는 왜 비참한(miserable) 빈민들 이야기를 썼을까. 벽지조차 눈 아린 방에서 우두망찰 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혁명기 프랑스 부자들은 왜 약자와 더불어 살려고 했을까.

양극화 시대에 유럽이나 중국에서 강연하고, 일본에서 문학 답사할 수 있는 이 서생은 위고 정도는 아니지만 분에 겹게 풍족하다. 귀국하자마자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서생의 수업을 들은 한 분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이 글을 쓴다.

현대판 장발장들이 성프란시스 대학에 모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 공장에서 잘린 분, 회사 경영하다가 망한 분, 대졸자도 몇 분 계시다. 자원활동가들은 이 분들과 함께 밥 먹고, 공부하고 여행하면서 친척보다 더한 우애를 쌓는다. 며칠 전 구속된 이는 수업 전 미리 텍스트도 읽고 준비하던 성실한 분이다.

연체금 미납으로 연행되는 노숙인들이 있다. 연락처가 일정치 않으니 은행 고지서가 전달될 리 없다.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연체료, 십여 년 지나면 오백만 원 이상 쌓여, 어느 날 연행되고 구치소로 이감되어, 빵 하나 훔쳐 19년 옥살이한 장발장 비슷한 신세가 된다.

빈곤층 일자리 감소에 아쉬움
“일자리 없으면 불안할 수밖에”
작은 식당도 종잣돈 있어야 가능
힘든 이들 손 맞잡는 새해 되기를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프란시스대학 교수들은 곽노현 학장과 상의한다.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현대판 장발장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하는 ‘장발장 은행’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석방된 장발장들은 매달 몇십만원씩 갚아 완납한다.

23년 전 일본에서 처음 홈리스와 함께하는 일을 할 때, 그분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주소지였다. 우에노 공원 등지에서 거처하니, 자식이나 헤어진 아내에게서 연락이 오면 받을 주소가 없다. 서생의 주소를 가르쳐주라며, 명함을 준 적도 있다.

성프란시스 대학에는 장발장 닮은 한울님들이 많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학자들은 그로테스크·풍자문학 등 작품 분석을 하지만, 벌레 취급받은 적이 있다며 성프란시스 대학에서는 ‘작품 이후 이야기’도 나눈다.

“그레고르 잠자의 비극을 막으려면 가족 관계가 중요해요. 우리끼리라도 좋은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벌레처럼 대하는 이들이 있어요. 벌레도 대우받을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벌레가 장발장으로 변신하는 회복탄력의 환생은 불가능한가.

노숙인 독고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호연 장편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노숙인을 대하는 공무원들이 독고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숙인 중에 방통대에 입학하는 이들,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해서 복지사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다.

서암 정약용은 학문을 아학(雅學)과 속학(俗學)으로 나누면서, 경전만 외우는 아학만 하고 현실문제인 속학을 안 해서 젊은이들이 점점 약해진다고 지적했다. 성프란시스대학이야말로 속학의 전당이다.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

여기에서는 “빈천한 사람이라도 정성만 있으면 도를 닦을 수 있다.”는 해월 최시형의 말을 바로 체험할 수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를 쓴 위고가 살아있다면, 이 독특한 대학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지.

지난 연말 성프란시스대학 송년회에서는 우울한 대화를 나누었다. 노숙인 복지센터인 다시서기센터에서는 코레일을 통해 서울역 용산역 청소 등 반일제, 전일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바리스타, 조리사, 건설기계, 운전면허 등 직업 교육을 하려고 애써왔다. 아쉽게도 빈곤층을 위한 서울시 일자리가 2024년부터 많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은 불안해한다.

“인문학을 일 년 동안 배운다 해도 일자리가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힘이 없어요. 교수님들이 이 길을 좀 열어주세요.”

송년회에서 돌아오면서 서생은 한참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몇 년 전 삼성코닝 기업체로부터 도움받아 후암동에 문화공간 ‘길’ 카페를 열었지만, 지원금이 끊기자 주저앉고 말았다. 요리를 잘하거나 자격증 가진 이들이 있으니, ‘집밥’ 식당을 경영하자는 의견도 있다. 배달 전문과 현장 요리로 한다면 두어 평의 키친만 필요하고, 다른 분들도 배달하며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만 이런 소규모 식당에도 종잣돈이 필요하다.

‘희망의 인문학’을 연 오세훈 서울 시장에게 짧은 호소를 보낸다.

‘서울시에서도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문학 과정 졸업장과 함께, ‘일자리’를 수여해야 합니다. 장발장 시장을 창조한 위고의 마음으로 일자리에 관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새해의 새벽에 손 모은다. 구속된 장발장들이 풀려나 함께 떡국 먹을 수 있기를, 힘들거나 병들거나 절망한 분 곁에서 가만히 따순 손 맞잡는 설 인사 나누기를, 손 모은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