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믿는 구석' 방산…美의회 나온 '사막로봇개'도 한국 품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지난해 6월 방위 관련 미 하원 청문회에서 시연된 '고스트 로보틱스'의 전투용 로봇 '비전60'. 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방위 관련 미 하원 청문회에서 시연된 '고스트 로보틱스'의 전투용 로봇 '비전60'. AFP=연합뉴스

진돗개만한 크기의 네 발 달린 로봇이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지나간다. 기존 바퀴형 로봇은 평지를 벗어나면 이동을 못했지만, 다리마다 관절을 단 이 로봇은 돌이 깔린 언덕에서도 개가 비탈길을 오르듯 잘 움직였다. 미국 ‘고스트 로보틱스’라는 회사가 만는 제품 ‘비전60’의 핵심 특징이다. 비전60은 바위·모래·언덕 지형에서 정찰을 하기 위해 개발된 전투 장비다. 한 대당 가격은 약 2억원. 비전60에 어떤 센서를 추가로 붙이냐에 따라 가격은 5억원까지도 올라간다.

이 회사의 주인은 올해 상반기 LIG넥스원으로 바뀐다. LIG넥스원은 무기 체계의 무인·디지털·자동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고스트 로보틱스 인수를 결정했다. 지분 60%를 사들이는 데 1880억원을 투자했다. 기존에 LIG넥스원이 생산하던 인공지능(AI) 센서 등을 탑재할 무기 제조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회사는 “기존에 보유한 첨단 방위산업 기술을 확산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IG넥스원의 이번 투자는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군사력 강화 및 방위산업 수출 확대 정책과 맞닿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원천 봉쇄를 강조하며 “우리 군을 인공지능과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첨단 과학 기술에 기반을 둔 과학 기술 강군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LIG넥스원은 비전60 로봇에 소총을 장착해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공격력을 높이는 식으로 무기로서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한화시스템이 지난달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수주한 ‘중요 지역 대(對)드론 통합체계’ 사업도 군 과학기술화와 관련이 깊다. 한국 영공에 침투한 드론을 레이더로 탐지하고 → 영상 식별 → 전파 교란을 통해 무력화 하는 통합체계를 구축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듯 최근 분쟁 지역에서 드론 공습의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해 원자력발전소·공항·데이터센터에 이 체계를 갖추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군 강화, 방산 수출 동시 공략 

정부와 방산업계는 군 전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방위산업 기술 수출을 확대하려 한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앞으로 방위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수출 대상국과 품목을 다변화하고 2027년까지 대한민국을 방산 수출 4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연평균 150억 달러 이상의 방산 수출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판교에서 열린 방산수출전략회의에서도“방위산업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함께 뒷받침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노리는 정부 입장에선 방위산업이 '믿는 구석'일 수 있다.

이에 맞춰 현대로템도 야전용 다목적 무인차 ‘HR-셰르파’로 시장 확대를 노린다. 200㎏ 이상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적재 능력과 이동 중 펑크 위험을 없앤 ‘공기 없는 타이어’(Airless Tire)를 사용한다. 최고 시속 30㎞로 동물형 로봇(시속 약 11㎞)보다 빠르다.

지난해 10월 경기 성남에서 열린 방위산업전시회에서 현대로템 부스를 관련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지난해 10월 경기 성남에서 열린 방위산업전시회에서 현대로템 부스를 관련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대통령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올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와 수직이착륙 무인기 NI-500VT 등 차세대 기종에 대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KF-21에 무인 체계를 접목해 전투기 세대 진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방산 수출이 폴란드 등 특정국에 집중되는 점은 과제다. 지난해 방산 수출액 130억~140억 달러 중 30%가 폴란드였다. 2022년엔 폴란드 수출 비중이 72%에 달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폴란드 집권당이 선거에 참패해 의회 과반석을 잃은 뒤 야당 소속 하원의장이 “총선 이후 정부가 서명한 계약은 파기해야 한다”고 발언해 방산 계약 이행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국방 반도체 관련 지식재산권(IP)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고, 대만에서 생산해 조달하고 있는 국방 반도체 비중이 70%에 달하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심순형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잔여 대량 수출 계약 물량이 아직 남아 있어서 올해도 방산 수출은 긍정적인 편"이라며 "다만 전쟁 장기화에 따라 글로벌 무기 수요가 증가하는 호재와 원료 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은 극복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