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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지진에 공장 셧다운?…'반도체 부활' 노린 日 아킬레스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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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새해 첫날인 1일 일본에서 최대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6분께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能登) 반도 지역에서 규모 5.7의 지진이 관측된 것을 시작으로 주변 지역에서 오후 6시께까지 20여차례의 지진이 관측됐다.   특히 오후 4시 10분께 노토(能登) 반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가 최대 7.6에 달했으며 진원의 깊이는 매우 얕은 편인 것으로 추정됐다.   사진은 지진으로 갈라진 도로의 모습. 연합뉴스

새해 첫날인 1일 일본에서 최대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6분께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能登) 반도 지역에서 규모 5.7의 지진이 관측된 것을 시작으로 주변 지역에서 오후 6시께까지 20여차례의 지진이 관측됐다. 특히 오후 4시 10분께 노토(能登) 반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가 최대 7.6에 달했으며 진원의 깊이는 매우 얕은 편인 것으로 추정됐다. 사진은 지진으로 갈라진 도로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에서 규모 7.6 강진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본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이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꿈꾸며 생산공장 유치에 힘을 쓰는 터라, 지진이 향후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2일 일본 경제매체 동양경제 등에 따르면, 지진 발생지 이시카와현과 주요 피해지 도야마현, 후쿠이현 등에 위치한 반도체 소재·제조 공장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이들 지역에는 무라타·도시바·고쿠사이 일렉트릭·파나소닉 등 공장이 위치해 있다. 그러나 동양경제는 “ 여진이 계속될 만큼 생산설비나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전했다. 현재 건설 중인 TSMC 공장 등 주요 반도체 시설은 동일본 지역 해안과 규슈 쪽에 집중된 만큼 이번 지진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반도체 가격 상승 영향도

대만 TSMC는 올해 양산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립하고 있으며 두번째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8일 촬영한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 전경 연합뉴스

대만 TSMC는 올해 양산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립하고 있으며 두번째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8일 촬영한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 전경 연합뉴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전 세계 반도체 소재 시장의 약 52%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도 존재감이 막강한데, 전 세계 상위 15개 반도체 장비 제조사 중 7개가 일본 기업이다. 첨단 제조시설은 없지만, 범용(레거시) 반도체를 생산하는 웨이퍼 공장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자동차용 시스템반도체(MCU)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으며,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5%를 차지하는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도 일본 여러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할 때 마다 이들 반도체 기업도 영향을 받아 왔다. 2022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 규모 7.4지진이 발생하면서 무라타·소니·르네사스·신에츠 등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는 2020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르네사스 공장 3곳이 생산을 중단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줄어 완성차 업체들의 신차 출고가 지연됐다.

규모 9.0이었던 2011년 동일보 대지진 때는 지진이 반도체 가격 상승을 이끌기도 했다. 지진 진원지와 가까운 이와테현에 위치한 당시 도시바의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이 중단됐고, 르네사스의 생산 시설 8곳도 가동을 멈췄다. 이밖에 후지쯔 반도체 공장, 모토로라 일본 반도체 공장도 영향을 받으며 반도체 시중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2016년 4월 규슈 구마모토현 규모 6.5 지진으로는 소니의 실리콘반도체(CMOS) 이미지센서 공장 3곳이 폐쇄됐다. CMOS 이미지센서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소니의 공급 차질에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삼성전자 등을 대안 공급처로 찾았다.

보조금 효과 깎아 먹는 일본 지진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지진 피해 사례가 누적되면서 업계에선 일본이 반도체 생산기지로 매력적인 입지는 아니라는 평가가 다시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 라인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하는 데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라며 “제품 수율을 위해 세팅한 것을 다시 조정하고, 제작하던 웨이퍼도 전량 폐기해야 해 지진으로 공장이 한번 중단되면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재기에 사활을 걸었다. 반도체 부족으로 전자제품을 비롯해 자동차 등 일본 주력 제품들이 생산 차질을 빚자 공급망을 내재화 해야 한다는 데 절실하다. 대만 TSMC는 현재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립하고 있으며 두 번째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5000억 엔(4조8000억원)을 투자해 일본 히로시마현에 차세대 D램 공장을 증설하며, 삼성전자도 요코하마시에 400억엔(3600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거점을 세우기로 했다. 일본 대기업들의 합작사인 라피더스도 홋카이도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투자가 일본에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며, 기업에 더 많은 투자와 경쟁을 촉진해 임금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일본 찾는 이유는 

지진 위협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이처럼 일본 행을 결정하는 데에는 막대한 보조금 영향이 크다. 일본 정부는 생산시설 건설 비용에 최대 50%를 지원하고 3년 내 생산성을 10% 이상 올리면 세액공제 10% 혜택도 제공한다. 한국이 반도체 시설투자에 세액공제 15%를 제공하는 것에 비해 파격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지진 위험이 있는 한 일본이 보조금 이상의 이점이 있어야 반도체 제조 산업 부흥에 성공할 거란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진은 대만에서도 잦지만, TSMC가 대만에 공장을 더 늘리고 첨단 라인을 대만에만 두는 이유는 보안이나 집적 효과 등 대만의 이점이 위험성을 크게 상쇄하기 때문”이라며 “일본도 보조금 외에도 지진 리스크를 덜어낼 수 있는 확실한 이점이 있어야 제조시설을 더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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