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식의 퍼스펙티브

ESG, 도입은 했지만 인식 부족하고 제도도 미비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자본의 탄생』 저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자본의 탄생』 저자

대한민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터널에 갇혔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ESG가 터널에 갇힌 것은 여러 요인이 있다. ESG에 대한 각 경제 주체의 생각은 다르다. 대기업은 처음엔 긴장했으나 지금은 워싱(Washing·위장)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소기업은 처음엔 ESG를 너무 몰랐고 지금은 혼란스럽다. 시민단체는 처음엔 혹시나 하고 기대했으나 지금은 걱정이 많다. 그 외 많은 기관·단체는 ESG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민은 많이 하지만 딱히 실행하는 것은 없다. 최근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공급망을 교란하면서 여러 국가와 기업의 ‘ESG 회피 심리’에 절묘한 도피처를 제공했다.

ESG는 자본주의에 대한 브레이크

ESG란 용어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2004년 발간한『Who Cares Wins(배려하는 이가 이긴다)』에서 처음 사용됐다. 친환경적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 합리적 거버넌스 운영을 통합하여 평가·판단·투자하는 것이 ESG다. 코피 아난은 이 작업에 세계 9개국 20여 개 금융기관을 참여시켰다. 이어서 2006년 4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요 연기금 기관장들과 함께 ‘책임투자원칙’ 성명을 발표했다. PRI로 불리는 이 성명서에는 이윤 추구가 존재 목적인 투자(Investment) 앞에 책임(Responsible)을 강조했다. 즉 PRI는, 연기금들이 투자대상 기업을 판단함에 있어서 재무능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E), 사회적 가치(S), 지배구조(G) 등 비재무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원칙으로 했다.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 급행열차에 ESG라는 완충적 브레이크를 유엔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ESG 20년, 세계 각지 제동 기류
수익 낮고, 에너지 값 급등 작용
한국 재생에너지 OECD 최하위
한전 전력시장 독점 큰 걸림돌
남녀차별·거수기 이사회 여전
기업 안팎 강력 견제장치 쓸 만

이를 계기로 금융가들은 ESG를 기반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 ESG 항목에 대한 측정·보고·검증이 중요해지다 보니 ESG 보고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작성이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개별 금융 자본마다 ESG 평가 항목과 항목별 가중치가 다른 데다 금융기관 스스로도 항목별 가중치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피평가자 입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된다.

금융자본의 변심

그러면 금융자본은 왜 스스로 이런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가. 주요 이유로 ESG에 대한 금융자본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금융자본의 가장 큰 리스크인 전 세계적 기후위기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ESG를 시작했지만, 현재로선 ESG 투자가 막상 자본의 자기 증식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2018년 초 주요 기업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화석에너지 다소비 기업에는 투자를 중단하겠다’라고 하고 실제로 투자를 축소했다. 이를 계기로 ESG가 급격히 확산했다. 그러나 그렇게 회수한 자금이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ESG 중심 투자에서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 화석에너지 기업은 여전히 고수익을 내고 있지만, ESG ‘가치’는 아직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가격’에 반영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래리 핑크는 ESG란 단어가 과도하게 정치화되었다며 용어 사용을 중단했다. ESG의 주요 지지자였던 금융자본의 태도 변화는 ESG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우리 경우는 어떤가? 그 터널이 더 어둡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는 점에서 문제가 보다 심각하다. 여기엔 ESG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제도적 미비 탓이 크다.

한국 재생에너지 여건 좋아

친환경가치(E) 측면에서 대표적인 걸림돌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낙후된 전력시장 제도다. 많은 이가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여건이 안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절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제조업 국가인 독일, 일본, 중국보다 좋거나 비슷하다. 태양광의 경우 연평균 일사량(㎾h/m2)은 한국(1459), 중국(1457), 일본(1355), 독일(1056) 가운데 우리가 가장 좋다. 육상풍력발전 평균 이용률은 23%로 일본(20%), 호주(27%), 중국(26%)과 비슷하다. 해상풍력발전은 약 30%로 일본(30%), 중국(35%), 미국(30~50%, 일부 지역은 30~31%) 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너지공단 통계) 우리나라 풍속 범위도 5.39~8.12m/s(중위값 6.2m/s)로 경제성 확보 기준인 6m/s를 넘는 지역이 다수 존재한다.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도 발전은 북부지역에서, 수요는 남부지역에서 일어나서 송전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독일은 2023년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52.5%를 차지했고, 2030년까지 80%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10% 미만에 머무는 또 다른 이유는 전력 판매시장이 한국전력 독점 구조라는 점이다. 기업이 필요한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하는 RE100의 경우 해외 사업장에서는 거의 100%를 달성하고 있지만, 국내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하는 전력(PPA)의 경우 송배전 요금이 기존 한전 제공 전력보다 거의 배나 된다. 앞으로 국내 RE100 부족으로 많은 기업이 제조 공장 투자를 국내보다 해외에 할 것이다. OECD 국가 중 전력 판매 독점은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않고 누수도 못 막는 땜질 처방으로 대처하고 있다.

애플은 성별 임금 격차 0%

사회적 가치창출(S) 상황은 더 짙은 암흑이다. 2015년 유엔이 ESG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목표로 결의한 것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다. SDGs는 기본적으로 경제·사회·환경 정책의 균형을 전제로 하는데, 핵심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조직의 가치사슬을 세부 단계로 나누고, 그 가치사슬에 있는 이해관계자를 적극 참여시켜 ‘숙의 공론화 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쾌한 방법이 ‘협력회사와 기술 공유’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잘 안 되고 있다. 심지어 숙의 공론화 과정 그 자체가 ESG 활동임에도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갑(甲)의 기준 준수를 강요하거나 책임 전가용 근거를 남기기 위한 기록 활동이 많은 게 현실이다. 평소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고 축적된 조직일수록 예방적 인지 능력이 높아 위기 극복도 잘하게 된다. 따라서 소외 없는 소통과 적극적 실행이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4년간 850만 명에게 디지털역량 교육을 제공하고, 넷플릭스는 남녀 불문하고 직원에게 52주의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애플은 이미 2017년에 전체 사원의 성별 임금 격차를 0%로 만들었다. 우리는 가장 앞서있는 삼성전자도 23.1%나 된다(2022년).

낙하산 인사로 거버넌스 왜곡

합리적 거버넌스 구성과 운영(G)은 터널 끝이 명확히 보이건만 실행을 못 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거버넌스란 한 국가의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및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거버넌스는 또한 시민들과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밝히고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을 다 하며, 서로 간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는 기구나 제도로 구성된다”라고 정의했다. 기업 입장에서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을 위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욕망이 있고 자본은 탐욕을 추구한다. 욕망 있는 인간이 탐욕 있는 자본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망이 탐욕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견제기구(G)가 필요하다. 그러나 견제해야 할 거버너스 구성은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대부분 조직 오너의 측근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로 인한 폐해는 심각하다. 최근의 카카오 사례는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공공기관, 민간기업 모두 낙하산 인사가 일상화되었다. 반면 GM은 이사회 46%가 여성이고 산하 위원회의 50%를 여성위원장이 리드하고 있다.

ESG 확산에 일부 제동이 걸리긴 했으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자동차 산업이 결국엔 전기차로 옮겨가게 될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도 ESG 터널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ESG 실천은 개별 조직이 자생력을 갖고 자기 생태계의 이해관계자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ESG를 추진하는 조직이라면 거버넌스가 시대 가치를 인식하고, 권한 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강력한 견제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 외부적으로는 자본에 독립적인 언론이나 시민단체, 내부적으로는 직원협의회 같은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새해엔 ESG를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다. 환경과 공동체 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했느냐가 기업 가치와 비즈니스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ESG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세계가 움츠릴 때 오히려 뛰어나가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착한자본의 탄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