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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후폭풍…부동산PF 돈줄 말라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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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태영건설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신청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금융사가 부동산 PF 관련 자금조달을 꺼리면서, 자본력이 약한 건설사의 추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태영건설 금융채권단에 보낸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 소집 통보 문건’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직접 차입한 돈은 금융사 80곳, 1조3007억2000만원이다. 여기에는 회사채·담보대출·기업어음·PF 대출 등이 포함돼 있다. 태영건설이 직접 빌린 돈이 아니라 PF 사업장 등을 보증한 대출 규모는 9조1816억원에 달했다. 산업은행이 태영건설 직접 대출과 PF 보증채무를 합해 소집 통보를 보낸 채권단 규모는 400곳이 넘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가 본격화됐지만, 채권단 구성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영건설이 부동산 PF 관련 채무보증이 많다 보니, 채권단 수가 다른 기업보다 많고 권리관계가 복잡해서다.

금융당국이 아직 착공하지 않거나, 분양 전인 사업장을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이른바 ‘옥석 가리기’를 예고한 만큼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수 있다.

실제 시장은 ‘태영건설 리스크’가 부동산 PF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벌써 돈줄 죄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일 신한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넷째 주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거래량은 최고 신용등급인 A1은 2조1600억원, 그다음 신용등급인 A2는 34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넷째 주 A1(6조1600억원)·A2(6500억원)의 거래량과 비교하면 각각 65%·47% 급감했다. ‘태영발(發)’ 리스크가 시장에 본격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PF-ABCP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설이 나온 지난해 12월 둘째 주부터 거래량이 줄기 시작했다. 통상 만기가 3개월로 짧은 PF-ABCP의 거래량이 줄면 그만큼 차환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럴 경우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를 중심으로 위기가 또 올 수 있다. 실제 올해 갚아야 하는 PF-ABCP는 20조3000억원인데 이 중 16조7000억원이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미래 부동산 개발 수익을 근거로 사업을 시작하는 부동산 PF는 대출채권 등을 담보로 한 기업어음인 PF-AB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 등 금융사가 PF-ABCP 발행을 위해 신용보강을 해준다. 하지만 금융사가 PF 사업 부진을 우려해 신용보강을 꺼리면 PF-ABCP 발행량이 줄면서 자금조달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레고랜드 사태 때는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PF-ABCP의 미상환 가능성이 커지면서 채권시장에 위기가 왔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가 부동산 PF 시장에서의 과도한 자금 회수가 나타나는지 상시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권이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으로 대응할 경우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1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F(Finance)4’로 불리는 금융 관계기관 수장은 비공식 회의를 갖고, PF 부동산 시장 불안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레고랜드 때 채권시장 불안의 소방수 역할을 했던 채권안정펀드의 운용 규모를 20조→30조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관련 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건설사 발행 회사채·CP 매입과 PF-ABCP 차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PF-ABCP를 장기 대출로 전환하는 보증 프로그램도 증액하기로 했는데, 이에 더해 추가 대책까지 살펴봤다.

지난달 28일에도 회의를 주재한 최 부총리는 “시장안정 조치는 레고랜드 사태에 따라 순차적으로 추가돼 현재 85조원 수준”이라며 “필요하면 추가 확대해 시장 변동성의 확대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도 별도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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