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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목표' 뒤통수 노리는 北, 우크라 무인정의 기습 배울까[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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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이 승조원 없이도 해저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무인잠수정을 처음으로 확보했다.

미국 해군의 무인수상정 시호크의 자율항해 모습. 미 해군

미국 해군의 무인수상정 시호크의 자율항해 모습. 미 해군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미 해군과 보잉에 따르면 보잉이 개발한 오르카(Orca) 초대형 무인잠수정(XLUUV) 시제품 1대를 최근 해군에 인도했다. 오르카는 미 해군이 2019년 주문을 넣어 2022년 취역한 뒤 미 캘리포니아주 헌팅턴비치에서의 시험항해를 마쳤다. 앞으로 보잉은 오르카 시제품 5대를 더 납품할 계획이다.

보잉은 오르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진보되고 능력 있는 무인잠수정(UUV)”이라며 “대량으로 탑재하고 해저를 장거리로 완전 자율항해를 하는 잠수정”이라고 소개했다. 해군도 “해군의 수중전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대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오르카는 미 해군 주력 유인 잠수함으로 길이가 110m에 달하는 로스앤젤레스(LA)급의 4분의 1 정도(26m)이다. 디젤 엔진을 사용하지만, 승조원이 없기 때문에 몇 달씩 작전을 지속할 수 있다. 순항미사일과 어뢰는 물론이며 소형 무인잠수정까지 장착할 수 있다.

무인화의 흐름이 하늘에 이어 바다에서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유령함대'로 중국 맞서려는 미국

오르카는 미 해군의 야심작인 ‘유령함대(Ghost Fleet)’의 한 축이다.

유령함대는 미래학자 피터 싱어와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출신인 어거스트 콜의 소설 『유령함대』에서 유래했다. 이 소설에서 미 해군은 제3차 세계대전에서 스텔스 구축함인 줌왈트함을 앞세워 중국을 이긴다는 내용이다.

미국 해군의 초대형 무인잠수정(XLUUV) 오르카. 최근 미국의 방산업체인 보잉이 납품했다. 보잉

미국 해군의 초대형 무인잠수정(XLUUV) 오르카. 최근 미국의 방산업체인 보잉이 납품했다. 보잉

미 해군은 지난해 수송용 고속함을 개조한 무인수상함 레인저(Ranger) 등 4척으로 꾸려진 ‘오버로드 유령함대(Ghost Fleet Overload)’를 만들었다. 지난 9월엔 이 ‘함대’ 소속 레인저함과 마린함이 일본 요코스카로 건너와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 70) 등 제1 항모타격단과 훈련을 뛰었다. 이들보다 크기가 작은 무인수상정 시호크(Sea Hawk)와 시헌터(Sea Hunter)는 미 해군이 2021년이 인수했다.

이들 무인수상함ㆍ정은 전 세계를 무사히 돌아다니면서 자율항해 능력을 자랑했다. 미 해군은 이들 무인수상함ㆍ정을 대상으로 각종 해상전투 시험을 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모두 비밀로 묶어 숨기고 있다.

미 해군은 2030년대까지 유인함과 무인함ㆍ정을 적절히 섞은 유령함대를 건설할 계획이다. 유령함대로 중국이 대함탄도미사일(ASBM)ㆍ극초음속미사일 등으로 다져놓은 ‘반접근거부(A2AD)’ 방어망을 뚫겠다는 게 미 해군의 바람이다. 각종 무인함ㆍ정과 무인잠수함ㆍ정을 첨병으로 내세워 적진을 정찰하고 감시ㆍ탐지 자산 등 주요 목표를 타격해 방어망을 흩트려 놓은 뒤 유인함이 그 안으로 진입한다는 방식이다.

2028년까지 무인전력 9척 확보

미 해군은 현재 실전에 사용할 3종류의 무인수상함과 무인잠수정을 개발하고 있다. 무인수상함으로 60~90m 크기에 만재배수량 1000~2000t의 코르벳(초계함) 규모의 대형무인수상함(LUSV)와 13~58mㆍ500t 남짓의 중형무인수상함(MUSV)다. 이들 무인수상함은 값싸면서도,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고, 모듈을 갈아 끼우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될 것이다.

지난 7월 태평양에서 열린 훈련에서 미국 해군의 무인수상함인 레인저(왼쪽)가 이지스 구축함인 숍을 따라 가고 있다. 미 해군

지난 7월 태평양에서 열린 훈련에서 미국 해군의 무인수상함인 레인저(왼쪽)가 이지스 구축함인 숍을 따라 가고 있다. 미 해군

LUSV는 16~32셀의 수직발사대(VLS)를 달아 대잠수함전을 벌일 수 있으며 수상과 지상의 목표도 타격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승조원이 탈 수도 있다. MUSV는 정보ㆍ감시ㆍ정찰 임무와 전자전을 주로 수행한다.

무인잠수정인 XLUUV는 지하철 객차 크기다. XLUUV는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적 잠수함이 지나가면 떠올라 공격하는 해머헤드(Hammerhead) 기뢰로 무장한다. 미 해군은 유인수상함과 유인잠수함에서 발진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무인수상정(USV)과 무인잠수정(UUV)도 연구 중이다.

미 해군은 2024~2028년 회계연도 기간에 LUSV 6척과 XLUUV 3척을 지을 생각이다. 건조비용은 LUSV가 2억 4000만~3억 1500만 달러, XLUUV가 1억 1000만 달러 내외일 전망이다. MUSV는 아직 예산에 태워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형 유령함대 '네이비 씨 고스트' 

해군은 미 해군을 따라 한국형 유령함대 건설에 나섰다. 해군은 지난해 해양 유ㆍ무인 복합체계를 건설한다는 ‘네이비 씨 고스트(Navy Sea GHOST)’를 발표했다. 네이비 씨 고스트는 수상ㆍ수중ㆍ공중 등 전 영역에서 초연결ㆍ초지능을 기반으로 유ㆍ무인전력을 통합 운용해 작전ㆍ임무수행 능력을 극대화하는 체계를 뜻한다.

지난 6월 8일 부산 작전기지에서 해군이 선보인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적용 상륙작전' 시연 행사에서 유무인 전력들이 기동하고 있다. 해군

지난 6월 8일 부산 작전기지에서 해군이 선보인 '해양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적용 상륙작전' 시연 행사에서 유무인 전력들이 기동하고 있다. 해군

해군은 “정찰용 무인 수상정(USV), 전투용 무인 잠수정(UUV), 함 탑재 무인 항공기(UAV) 등 수상ㆍ수중ㆍ공중 무인전력의 균형 있는 확보를 추진 중”이라며 향후 기술발전을 고려해 AI가 적용된 해양 무인전력을 단계적(원격통제형→반자율형→자율형)으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군은 제5 기뢰ㆍ상륙전단을 시범부대로 지정했고, 2027년까지 소해함에서 기뢰를 탐색하는 수중 자율 기뢰탐색체와 기뢰를 소해하는 기뢰 제거처리기를 복합 운용할 계획이다.

지난 6월 8일엔 부산 작전기지에서 ‘해양 유ㆍ무인 복합전투체계를 적용한 상륙작전’을 선보였다. 네이비 씨 고스트의 특징을 실제 전장에서 구현하는 시범이었다. 무인수상정(USV)과 무인항공기(UAV) 등 무인전력을 동원해 상륙지역을 사전 정찰하고, 기뢰를 탐색ㆍ제거하고, 적 해안방어 미사일 기지ㆍ이동식 발사대를 타격하고, 해안포 진지를 제거한 뒤 적 해안을 돌파해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일각에선 해군이 정말 네이비 씨 고스트에 열심인지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정부 예산으로 개발한 뒤 2017년 시범운용을 마친 무인수상정은 해검(海劍)을 해군이 인수하지 않은 점이다. 해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 작전에 투입할 수는 없고, 연안ㆍ항구 경비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미 해군은 기술시범사업 용도로 제작한 무인함을 가져다 다양한 조건에서 굴려봐 관련 데이터를 쌓았다”고 말했다.

자폭무인정으로 러시아 함대 격파한 우크라

해군은 당장 NLL에 내보낼 무인수상정을 원하지만, 해군기지를 24시간 철통 같이 지킬 무인수상정이 더 시급할 수도 있다. 이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이다.

해안으로 표류한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수상정. 러시아 국방부

해안으로 표류한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수상정. 러시아 국방부

지난해 10월 29일 우크라이나는 크름 반도의 러시아 군항인 세바스토폴을 9대의 무인항공기와 7척의 무인수상정으로 때렸다. 이 공격 후 세바스토폴에서 큰 폭발음이 들린 뒤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소해함 1척과 바지선 1척이 부서졌다고 발표했으나, 우크라이나는 4척이 손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동원한 무인수상정은 폭발물을 싣고 목표물로 돌진해 터지는 자폭형이다. 우크라이나는 자폭 무인수상정의 사거리와 폭발력을 늘려 러시아의 흑해함대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 러시아 흑해함대의 전차상륙함(LST)과 보급함이 추가 피해를 당했다. 또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수상정은 지난 8월 5일엔 크름 반도와 러시아를 잇은 크름 대교를 공격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해군 분석 센터(CNA)의 새무얼 벤뎃은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무인수상정으로 러시아를 공격하면, 러시아가 그에 대응하면서 해전의 무인화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공개정보 분석가 H I 서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10월 29일에 투입한 자폭 무인수상정은 길이 5.5m에 1t까지의 폭발물을 탑재하고 최대 60시간ㆍ400㎞를 항해할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80㎞. 목표물의 좌표를 입력하면 알아서 간다. 움직이는 목표는 아직 공격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면밀하게 들여다 볼 것이다. 아군 해군기지에 정박한 이지스 구축함과 같은 값비싼 목표를 은밀히 다가간 뒤 제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빠른 속도로 병력이 줄어들 전망이라 해군기지 경비정을 운항할 여력이 많지 않다.

거함거포와 무인전력이 지배할 21세기 해전

무인수상함ㆍ정이나 무인잠수함ㆍ정은 아직 한계가 있다. 무인 해상전력은 즉응성과 범용성이 떨어진다. 복잡한 전장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정도의 인공지능(AI)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크기가 작아 임무나 작전에 맞는 모듈을 갈아 끼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무인수상정 해검. 방사청과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공동 개발했다. 방사청

무인수상정 해검. 방사청과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공동 개발했다. 방사청

또 유인 해상전력은 항해 중 고장나면 고칠 수 있지만, 무인 해상전력은 그럴 수 없다. 해킹이나 재밍이 걸리면 자율항해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아직 신뢰성과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같은 한계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21세기 해전은 신 거함거포와 함께 무인 해상전력이 주도할 예상이다. 무인 해상전력이 물론 모든 유인 해상전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유무인 복합체계가 대세다. 또 미 해군처럼 제법 크기가 있는 무인 해상전력이 주도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자폭 무인수상정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해군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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