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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타고 고속철 이용…경영난 터미널 3년 새 18곳 폐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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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12면

폐업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상봉터미널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봉터미널이 철거된 자리엔 지상 49층 규모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연합뉴스]

폐업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상봉터미널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봉터미널이 철거된 자리엔 지상 49층 규모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연합뉴스]

“열었다 닫았다 고생만 하다 사라진다니 안타깝지.”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송탄 시외버스터미널. 입구를 서성이던 조경은씨(52)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의 말처럼 이 터미널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9년 송탄시장 인근에 개장한 뒤 지난 1993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그러다 2016년 토지 사용권 소송이 벌어지면서 더는 영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1년간 길건너에 임시정류장 체제로 운영했다. 그 사이 예산을 마련한 평택시가 토지를 매입하며, 2017년 현 위치에 재개장했다. 30여년간 역경 속에서도 평택시 북부 광역 교통을 책임지던 송탄터미널은 그러나 오는 31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터미널 가는 손님이 없어 폐업할 거라 예상했어.”

송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정차 중이던 택시 기사 김모씨(49)의 평가는 조씨와는 사뭇 달랐다. 이미 수년간 터미널을 찾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터미널보다 인근의 송탄역(수도권 지하철 1호선) 앞에 손님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송탄 시외버스터미널의 하루 이용객 수는 2019년 1200여 명에서 최근 100명대로 줄었다. 이용객 감소는 노선 축소와 배차 간격 확대 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이용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송탄터미널을 통해 이용 가능한 고속버스는 2019년 19개 노선에서 최근 10개 노선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용자 감소에 이은 버스터미널 폐업. 일부 지역의 일로만 여겨졌던 일이 수도권까지 전이됐다. 올해 들어 문 닫은 수도권 터미널만 3곳. 인구 900만의 거대도시 서울시에선 상봉터미널이 지난 1일 폐업했다. 각각 인구 100만을 자랑하는 성남시와 고양시에선 성남종합터미널(1월 1일)과 화정터미널(6월 1일)이 문을 닫았다. 2020년 이후 폐업한 국내 버스터미널은 18곳에 이른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줄줄이 폐업을 선택한 버스터미널은 하나같이 경영난을 지목한다. 이용객이 줄고 노선과 배차가 감소하면 수익을 낼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용객이 줄면 승차권 판매는 물론, 터미널 내 상가 매출이 줄어 임대료 수입까지 줄어든다. 실제로 이달 초 폐업한 상봉터미널의 경우 원주행 시외버스 노선을 제외하고 모두 폐지된 상태였다. 사실상 버스터미널의 역할이 사라진 셈이라 식당을 비롯한 부대시설 역시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상봉터미널의 지난 10월 한 달 이용객은 26명, 총수입은 83만원에 불과하다.

다른 터미널도 비슷한 처지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의 시외·고속버스 매출액은 2019년 대비 절반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버스터미널 대다수가 수익 감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훈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 사무총장은 “수도권 대형터미널은 상가 임대료로 버티고 있지만, 매표 수입 비중이 큰 터미널은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십년간 ‘국민의 발’이 돼 준 버스터미널에 이용객이 줄어든 이유로 전문가들은 고속·시외 버스를 대체할 운송 수단의 발전을 꼽는다. 고속철도와 저가항공 등 터미널보다 빠른 광역 교통수단이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송탄터미널만 하더라도 택시로 15분 거리에 고속철도 정차역인 평택지제역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고속철도를 타면 20여분 만에 서울 수서역에 도착한다. 반면 송탄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서울 남부터미널까지는 1시간, 동서울터미널까지는 1시간30분가량이 걸린다.

폐업을 결정한 다른 터미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예컨대 성남 종합버스터미널의 수인분당선을 이용하면 20분만에 서울 수서역에 도착해 SRT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철도와 항공은 지난해에 이미 이용객 수가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고속·시외 버스 이용객수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60~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버스터미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체 교통수단인 철도나 항공편을 이용하기 어렵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동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 관계자는 “모든 국민이 역세권에 살 수 없고, 복잡한 교통을 환승해 가며 큰 도시로 나갈 수 없다”며 “국민의 보편적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버스터미널은 계속해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시정류장을 운영 중인 곳에선 인근 지역 교통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버스터미널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올해 초 폐업에 들어간 성남 종합버스터미널만 하더라도 도로와 접한 임시정류장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교통 혼잡이 문제로 부상하기도 했다. 민간 사업자의 폐업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용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세정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버스터미널 사업은 민간사업이면서 동시에 공공성이 매우 큰 사업”며 “앞으로도 폐업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폐업 전 정부 지원이나 사전 조율을 통해 이용객과 지역 사회에 불편을 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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