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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극 초래 무리한 수사에도 반성 없는 경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1호 38면

이선균씨 3차 조사 비공개 요청 거절 드러나

19시간 밤샘 조사도 관련 규칙과 맞지 않아

경찰의 후진적 수사 관행 철저한 조사 필요

배우 이선균씨의 발인식이 어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가족과 동료 배우 등이 눈물 속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세계적 인지도를 지닌 최정상급 배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자체로도 놀랍지만, 하나씩 드러나는 고질적 수사 관행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다.

경찰의 이씨 내사 사실이 지난 10월 한 지방 언론에 처음 보도된 이후 온갖 사생활 관련 폭로가 속출했다. 경찰은 지난 10월과 11월에 이어 지난 23일까지 이씨를 석 달 연속 공개소환해 포토라인에 서게 했다. 특히 경찰의 마지막 소환에서는 19시간 동안 밤샘 조사가 진행됐다. 사흘 뒤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약 수사 전문가들은 “최악의 잔인한 수사 방식”이라고 평한다. 과학적 뒷받침이 안 된 상태에서 공개 소환을 택한 것부터가 부적절했다. “연예인에겐 음해성 제보가 많아서 은밀히 부른 뒤 음성 판정이 나오면 조사 사실 자체를 비공개했다”는 전직 검사의 증언과 비교해 보라. “수사가 언론에 노출된 만큼 한 차례 공개 소환을 했더라도 음성 판정이 나왔다면 이후 조사는 노출해선 안 된다”(김경수 전 대구고검장)는 지적이 대세다.

그래서 비보가 전해진 이후 경찰 지휘부의 반응을 납득하기 어렵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수사가 잘못돼서 (이씨 사망)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고,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적법하게 수사를 진행했고 수사 사항 유출도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이씨의 변호인은 “3차 조사를 앞두고 경찰에 비공개 출석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어차피 노출되는 상황이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걸 취재진이 보면 사람이 몰려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궤변에 가깝다. 통상 기자들은 경찰이 알려주지 않으면 소환 일정을 알지 못한다. 이른 아침에 부르는 등 이씨의 인권을 보호할 방안은 차고 넘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권력자가 언론 모르게 조사실로 직행했는가. 그러니 “공개 망신으로 압박 효과를 노린 것”이란 의심을 산다. 19시간 밤샘 조사는 더 끔찍하다. “이씨측이 원했다”는 경찰 설명보다는 “비공개 소환 요청을 거부당한 이씨로선 밤샘 조사와 반복되는 공개 망신 중 택일을 강요받은 상황”이라는 전직 검찰 간부의 해석이 훨씬 설득력 있다.

그동안 발전시켜온 인권 보호 규정은 오간 데 없다. 경찰 공보 규칙은 ‘사건관계인 출석 정보 공개금지’(15조)와 ‘수사과정의 촬영 등 금지’(16조)를 담고 있다. 경찰 수사 인권 보호 규칙은 ‘심야 조사 제한’(9조)과 ‘장시간 조사 제한’(10조)을 명기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문화된 꼴이다. 가수 권지용씨(지드래곤)의 혐의를 비롯해 무수한 수사 기밀이 보도됐는데 경찰에서 유출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나.

세계 주요 언론들이 다퉈 보도하는 비극을 겪고서도 환골탈태할 기미는 없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취임 시 “인권과 절차를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으나 그 기본이 무너졌다. 연일 경찰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더불어민주당은 준비가 덜 된 경찰에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위험한 칼을 쥐여준 장본인이 자신임을 잊은 듯하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후진적인 수사로 비극을 초래한 이번 사태를 적당히 넘겨선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나서 19시간 조사 등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발뺌에 골몰하는 경찰의 자체 조사는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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