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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세계의 발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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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39면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실망입니다. 관중들이 소련 팀을 응원하다니….” “그것은 농구 시합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제 겨우 ‘자유의 최전선’을 지키는 역할을 넘어 자기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망입니다. 그것을 못 보셨다니.” 1988 서울 올림픽 때 친분이 있던 미국 외교관과 나눈 대화이다.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가 처음 한국을 자신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나라로 발견한 것은 우리에게는 큰 참사인 한국전쟁 때였다. 미국 정부가 유엔(UN)의 이름으로 참전을 결정하였을 때 미국인들 중에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그 나라 사람들은 인도인인가, 일본인인가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에 이어 영국 정부가 참전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내각 회의에서 각료들 중에는 아예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한국은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되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한 전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전쟁이 실은 ‘3차 세계(소)전’이었고 세계인의 관심과 찬반을 가르는 ‘세계 시민전쟁(Weltbürgerliche Krieg)’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은 처음 ‘세계사’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남북한은 각기 동서로 갈라진 두 세계의 전위를 자처하면서 이 전쟁을 치렀다.

한국전·88올림픽으로 알려진 한국
산업화·민주화 이어 문화로도 주목
세계적인 역할 자임하는 건 긍정적
‘최선 외교=국민적 합의’도 새겨야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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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한민족의 역사상 전례가 없지 않았다. 민족적 위기를 당면하여 외부 세계에 관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 경우가 흔히 있었다. 당연히 이것은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는 민족적인 역량을 크게 훼손하는 원인이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었다. 중화의 세계와 일본의 세계는 갈등을 빚었다. 어려운 항일 투쟁의 과정에서도 소련의 세계에 대한 이견과 갈등은 분열의 요인이었고 마침내 자주독립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분열은 분단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분할 점령하는 일은 흔히 있었다. 그러나 지역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한 개의 직선으로 분할을 당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무도한 일이었다. 악명이 높은 사이크스-피코 합의(Sykes-Picot Agreement)도 일직선 분할은 아니었다. 그 당시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시사하는 조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한국은 세계와 다시 한번 극적인 조우를 한다. 88 서울올림픽은 적어도 현실 세계에서 반세기에 걸친 이념 논쟁을 정리하여 주었고 동서 냉전에 해빙의 기회가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냉전이 격화되었다면 88 올림픽은 냉전이 해소되는 계기였다. 흔히 공산권의 와해를 몇몇 주역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 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재건 정책 등도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말 이후 일어난 세계 정치 지형의 대변동은 서울올림픽이 구(舊)공산권에 촉발한 대중적인 반응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큰 변혁 이후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직접 확인한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 지식인 한 분은 이런 말을 하였다. “서울올림픽은 무엇보다도 구동구권의 대중 차원에서 큰 충격이었다. 본인은 물론 그 이전부터 국가 주도 계획 경제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대중들의 반응은 너무 강렬한 것이어서 소신을 주장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중국의 언론인은 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본 소감을 이렇게 썼다. “한마디로 서울의 거리는 환상이었고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후 한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평화를 기하고, 세계에서 위상과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대조적으로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막고 자신에만 집착을 하는 고립을 추구하여왔다. 말하자면 북한 정권은 스스로가 세계이어서 북한이 없다면 세계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국시로 삼는다. 한국은 한동안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였는데 최근에는 위상과 역할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여 스스로를 ‘세계적인 기축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간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을 하였고 최근에는 특히 문화의 영역에서 활발한 진출로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다른 한편 걱정이 앞선다. 세계는 우아한 의전이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항상 유동적이며 비전과 실익이 첨예한 갈등을 빚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과연 이런 세계에서 자신의 이상과 이해관계를 바로 정의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투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 도움 될 “한 말씀을” 해달라는 자리에서 해외 방문을 삼가시라는 고언을 드린 일이 있다. 시간과 경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전 사안의 경중을 구별 못 하는 권력의 허위의식에 대한 경계의 뜻이었다. “외교만 하면 좋겠다”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고 한다. 국제 사정에 통달해서 그런 말씀을 했을까? “최선의 외교정책이란 국민적인 합의”라는 대전 후 첫 오스트리아 연방 수상 레오폴드 피글의 말을 상기할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의 발견도 본국에서 시작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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