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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쌍방 심판론’의 현실적 한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1호 38면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지난 21대 총선은 ‘야당이 심판받은 선거’였다. 여당의 야당 심판론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환경이긴 했지만 태극기 부대와의 연결 논란 등 당의 우경화 흐름이 탄핵에 반성이 없는 것으로 비쳤고 이는 유권자 회초리가 여당이 아닌 야당을 향하게 했다. 선거에서 야당도 심판받을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정권 심판론 vs 야당 심판론 구도 속
중도층 민심 얻으려면 ‘+α’ 보여야

원래 선거의 본질은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다. 일을 잘했다면 여당이 선택을 받지만 일을 못해 경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유권자는 비록 야당을 지지하지 않아도 선거 당일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야당도 대통령 임기 초반이면 견제론, 중반쯤이면 심판론을 으레 들고나온다. 평가받는 쪽은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대개 방어 전략을 쓴다. 통상 국정 안정론을 내세운다.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수세적이다. 하지만 이런 방어 카드로는 승리는 물론 비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프레임을 찾는다. 기득권 세력 대 혁신 세력, 사회 불안 세력 대 사회 안정 세력, 낡은 세력 대 새로운 세력으로 구도를 전환하고 상대에게 기득권·불안·낡은 세력이란 딱지를 붙이고자 한다. 쉽지 않지만 잘 설계된 프레임은 선거운동원 1만 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시험을 앞둔 현 여권은 위기다. 대부분의 정치 지표가 빨간색이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러 있고 보수층도 60% 정도만 일을 잘한다고 답하고 있다.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20% 안팎에 불과하다. 정당 지지율도 정체 상태다. 최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여당에 공포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투표 열기도 높고 심판론도 제법 작동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수층의 충성도도 예전 같지 않다. 정치 여론조사 방식 중 녹음된 음성으로 실시하는 ARS 조사가 있다. 이 경우 예전엔 보수 정당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정치 관심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응답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적극적 보수층의 결집도가 높았다. 요즘은 진보 정당 지지율이 더 높다. 진보층 결집도가 올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보수층의 결집이 느슨해졌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했다. 무기력해 있던 보수 진영에선 분위기 반전에 대한 기대감도 읽힌다. 등장과 동시에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위원장은 취임 연설에서 야당과의 대립각을 분명하게 세웠다. 386 출신, 그리고 이재명 대표와 결투를 하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비록 여당이지만 방어가 아니라 야당 심판론을 내걸며 공격적인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힌 셈이다. 이로써 야당은 정권 심판론, 여당은 야당 심판론을 앞세우며 양쪽 모두 심판론을 외치는 ‘쌍방 심판론’ 구도가 짜이게 됐다.

야당에 대한 한 위원장의 공세적 접근은 일단 흔들리는 보수층을 다시 묶어내고 지지층을 복원하는 데 효과를 낼 것이다. 관건은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 유권자가 어떻게, 얼마나 반응하느냐다. 스포츠나 전쟁과 달리 정치는 상대방과 직접 치고받는 게임이 아니다. 설전을 벌이되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호응을 누가 더 많이 얻느냐의 싸움이다. 상대를 코너에 몰아도 관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하지 못하는 게 정치다.

심판론을 내세우면 각자의 지지층을 모으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층만 잘 결집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사전투표가 도입되면서 투표율 60%를 넘는 일이 흔해졌다. 이 정도면 양쪽 지지층 외에 중도층도 대거 투표장에 나온다는 의미다. 심판론만으로 중도층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진정 승리하길 원한다면 심판론 플러스알파를 보여야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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