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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책 읽고, SNS에 공부 인증샷…MZ 생존전략 '갓생' [월간중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금 챌린지'로 허리띠 졸라매고 ‘미라클 모닝’으로 자기 계발

아침 일찍 일어나 책 읽고, 인스타그램에 공부하는 사진 올려
“희망 놓지 않으려는 문화… 작은 계획 세워 성공한 뒤 성취감”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운동과 독서를 하는 ‘미러클 모닝’이 대세다. 대학생 강모(25·남) 씨는 이른 아침에 운동한 뒤 영어를 공부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운동과 독서를 하는 ‘미러클 모닝’이 대세다. 대학생 강모(25·남) 씨는 이른 아침에 운동한 뒤 영어를 공부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2024년 새해 MZ세대의 화두는 ‘갓생’이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갓(god)과 인생을 의미하는 생(生)을 결합한 신조어로, 성공을 위해 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MZ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떠오르고 있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 20대들은 유례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11월,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및 졸업(예정)자 3224명을 대상으로 ‘2023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졸업생들의 예상 취업률은 49.7%에 불과했다. 이들은 취업이 어려운 이유로 ▷경력직 선호 등에 따른 신입채용 기회 감소 ▷원하는 근로조건에 맞는 좋은 일자리 부족 등을 꼽았다. 직장·주거·결혼 문제 등으로 인해 20·30세대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고단한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20대들이 갓생에 도전하는 것이다. 알바천국이 지난 10월 Z세대 7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7.4%가 ‘갓생을 추구한다’고 답했다. 갓생을 추구하는 이유는 ▷스스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무기력·번아웃 극복 ▷성취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나타났다.

5시 기상해 명상한 뒤 목표 100번 쓰기

강지영(30·여) 씨가 미러클 모닝 팀원들과 함께 ‘목표 100번 쓰기’를 진행한 뒤 인증하는 모습. 강씨의 올해 목표는 ‘순수익 500만원 달성하기’다. / 사진:강지영

강지영(30·여) 씨가 미러클 모닝 팀원들과 함께 ‘목표 100번 쓰기’를 진행한 뒤 인증하는 모습. 강씨의 올해 목표는 ‘순수익 500만원 달성하기’다. / 사진:강지영

갓생을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운동과 독서를 하는 ‘미러클 모닝’이 대세다. 대학생 강모(25·남) 씨는 보통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눈을 뜬다. 수업 시간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7시를 넘기지 않는다. 기상 후에 찾는 곳은 헬스장이다. 1시간 정도 운동한 뒤에 샤워를 하고 바로 학교로 향한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수업 시간 전까지 영어를 공부한다. 3개월 째 미러클 모닝을 지속하고 있는 강씨의 오전 일과다. 미러클 모닝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자기 계발을 하는 것으로, MZ세대가 갓생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다.

강씨는 미러클 모닝을 지속하기 위해 일주일 중 3일은 휴식을 가진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으면 일찍 포기할 것 같아서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들이 꿈을 꾸고 있을 시간에 눈을 뜨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강씨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피곤했다. 아침에 수업을 들어가면 잠만 쏟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러클 모닝을 시작한 지 3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는 오히려 상쾌했다고 한다.

강씨가 미러클 모닝을 시작한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지난 7월 수술대에 오른 강씨는 두 달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쟁에서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열도 많이 받았다”며 “그래서 안정기가 지나자마자 바로 미러클 모닝을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니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를 위해 미러클 모닝을 시작한 강씨는 직장에 다녀도 미러클 모닝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이색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청년사업가 강지영(30·여) 씨는 본인 포함 13명으로 미러클 모닝 팀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인, 개발자, 영상 크리에이터 등 구성원도 다양하다. 그는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하지 않나. 혼자서 하면 흐지부지될 것 같아서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팀장인 강씨는 오전 4시 50분, 단체 소통방에 화상 회의 프로그램 링크를 올린다. 미러클 모닝은 5시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명상이다. “호흡에만 집중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명상이 끝난 뒤에는 ‘목표 100번 쓰기’를 진행한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100번 쓴 뒤에 팀원들 앞에서 직접 읽는 것이다. 이후 목표를 이룬 날을 상상하는 ‘시각화’를 한다. 시각화까지 끝나면 ‘긍정 확언’ 시간이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좋다’, ‘나는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다’는 등의 긍정적인 문장을 팀원들과 함께 외친다. 끝으로 ‘마법 일기’를 작성하면 미러클 모닝이 끝난다. 마법 일기는 하루의 계획을 ‘과거형’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운동, 독서 등의 통상적인 자기 계발과는 달리 강씨가 진행하는 미러클 모닝은 ‘멘탈 트레이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독서는 이미 매일 하고 있어서 굳이 미러클 모닝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미러클 모닝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인스타그램에 공부 시간 올려 인증하기도

대학원생 최다연(29·여) 씨는 ‘한 달 100만원 사용’을 목표로 현금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 사진:최다연

대학원생 최다연(29·여) 씨는 ‘한 달 100만원 사용’을 목표로 현금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 사진:최다연

SNS를 통해 공부를 인증하는 이른바 ‘공스타그램(공부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도 갓생의 색다른 방식이다. 인스타그램에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자신이 공부했다는 것을 인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750만 개가 넘을 정도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수험생부터 공시생, 대학생 등 다양한 부류의 젊은이들이 공스타그램을 올린다.

김모(29·여) 씨는 벌써 3개월째 공스타그램을 운영 중이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김씨는 “공부를 시작한다는 인증 사진과 함께 그날의 목표량, 다짐이나 느낀 점을 매일 올린다”며 “나와 같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극도 받아서 꾸준히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이모(26·여) 씨는 취업을 준비했던 2년가량의 시간 동안 공스타그램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주변에 함께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없었는데, (SNS상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공부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 공감과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씨는 “같은 목표를 꿈꾸는 인친(인스타 친구)들의 많은 공부시간, 높은 점수,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보며 ‘나도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스타그램을 하는 이들도 있다. 사무직으로 근무하며 야간대학까지 다니는 박수빈(25·여) 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현재는 공인중개사 합격 후 주택관리사까지 준비 중이다. 박씨는 “국가공인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다”며 “최종 목표는 감정평가사다. 감정평가사에 합격할 때까지 힘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뭐든지 시작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공스타그램 시작을 고민한다면 한 번 해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고물가 시대 생존 위해 카드 자르고 현금만

직장인 박수빈(25·여)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공부 시간을 인증한다. / 사진:박수빈

직장인 박수빈(25·여)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공부 시간을 인증한다. / 사진:박수빈

‘현금 챌린지’도 주목 받는다. 현금 챌린지는 매주 혹은 매월 지출할 현금을 정한 뒤, 현금 다이어리에 목적 또는 시기에 맞게 쓸 돈을 넣어두고 그 한도 내에서만 소비하는 방식이다. 과소비 위험이 큰 카드는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무지출 챌린지(하루 지출 0원 실천 도전)’가 아닌, 현금 위주의 생활로 소비를 절제하는 챌린지다.

이는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는 고물가에 따른 MZ세대들의 대응법이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3% 올랐다. 전월(3.8%)보다는 물가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며 고물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카드를 자르고 현금만 사용하는 챌린지가 유행하는 이유다.

대학원생 최다연(29·여) 씨는 현금 챌린지를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째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최씨는 “장기간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는 고시생이 되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의욕도 많이 없어지더라”라며 “작은 목표를 세워서 성취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학원 강사를 하다 임용고시를 위해 그만둔 최씨는 “몇 달 동안은 소득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생겼다. 벌이가 없다면 차라리 씀씀이를 바꿔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현재 목표는 ‘한 달 100만원 소비’다. 구체적으로 평일에는 2만원, 주말에는 10만원으로 정했다. 최씨는 “(평일과 주말 다 합해도) 쓰는 돈은 100만원이 채 안 되는데, 경조사처럼 의도치 않은 행사를 위해 남겨두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돈이 남을 경우엔 공부에 필요한 책이나 여행 경비, 데이트 비용 등을 위해 저축한다.

최씨는 현금 챌린지를 통해 인터넷 쇼핑 소비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주 들어가는 쇼핑 플랫폼에서 등급이 높은 편이었는데, 현금 챌린지에 도전한 뒤부터 낮아졌다. 금액으로 따지면 30만~40만원 정도 아꼈다”고 말했다. 현금 챌린지를 통해 최씨가 특히 얻을 수 있었던 건 성취감이었다. 그는 “소비 절제를 통해 저축한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살 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러클 모닝, 현금 챌린지 등의 갓생이 더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플렉스(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는 문화)’를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게 유행했다면, 앞으로는 작은 계획을 성공하는 데에서 성취감을 얻는 문화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gur145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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