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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누룽지탕이 왜 천하제일 요리가 됐을까?

중앙일보

입력

중국은 해물 누룽지탕을 비롯해 누룽지 요리가 드물지 않다. 셔터스톡

중국은 해물 누룽지탕을 비롯해 누룽지 요리가 드물지 않다. 셔터스톡

우리나라 사람들 누룽지 좋아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식이고 군것질거리일 뿐 요리는 별로 없다. 예전 엄청난 숭늉문화를 발전시켰지만 그럼에도 음식은 지금도 익숙한 누룽지 백숙 정도다. 백숙이라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한자로 흰 백(白), 익을 숙(熟)을 쓰는 백숙은 그저 끓인 누룽지일 뿐이다. 누룽지 삼계탕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해물 누룽지탕을 비롯해 누룽지 요리가 드물지 않다. 중국인들, 평소 누룽지를 자주 먹거나 즐기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밥 태운 부산물인 누룽지를 요리로까지 승화시켰을까? 스스로의 주장처럼 못 먹는 것 빼고는 다 요리할 수 있다는, 자칭 요리천국이기 때문일까?

절대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중국 누룽지 요리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쨌든 요리천국이라는 중국에서도 천하제일 요리라고 꼽았던 것은 다름 아닌 누룽지탕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황당한 소리를 했을까 싶은데 누룽지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는 사람은 청나라 건륭황제다.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황제였던 만큼 이 세상에서 귀하고 맛있다는 요리는 다 먹어봤을 것 같은 인물인데 산해진미 다 제쳐놓고 누룽지탕을 최고로 꼽은 것이 뜻밖이지만 이유가 있다.

자금성을 떠나 강남을 순시하던 건륭제가 어느 날 신분을 감춘 채 민심을 살피다 그만 길을 잃고 식사 때를 놓쳤다. 시장기가 돌아 주변 농가에 들러 식사를 부탁했지만 점심 때가 지난 후라 남은 밥이 없었다. 황제 일행의 측은한 모습에 집주인이 할 수 없이 솥에 남은 누룽지를 긁어 데운 후 뜨거운 국물을 부어 식사를 차렸다. 워낙 시장했기에 건륭제가 연신 맛있다며 하오츠(好吃)를 외쳤고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는 주인에게 천하제일 요리라는 글씨를 써주었다. 누룽지탕이 천하제일 요리가 된 사연이다.

황제가 강남 순행을 끝내고 자금성으로 돌아간 후 시골집에서 맛보았던 누룽지탕을 다시 찾았다. 그렇다고 궁중 주방에서 누룽지에 채소국 건더기를 얹어 황제 수라상에 올릴 수는 없었기에 튀긴 누룽지에 전복과 해삼, 죽순 등이 들어간 소스를 부어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해물 누룽지탕(海鮮鍋巴湯)은 이렇게 생겨났다고 한다.

대충 들어도 믿을 만한 구석은 거의 없지만 이런 이야기가 퍼진 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야 어쨌거나 중국에서는 왜 흔해 빠진 누룽지에 온갖 귀하다는 해산물을 넣어 해물 누룽지탕을 만들었을까?

해물 누룽지탕 외에도 중국에는 누룽지 요리, 중국어로는 꿔바차이(鍋巴菜)라고 하는 누룽지 음식이 있다. 천진의 특산 별미이기에 천진 방언으로는 가바차이(嘎巴菜)라고도 하는데 죽처럼 주로 아침에 부담없이 가볍게 먹는 음식이다. 이름은 누룽지 요리지만 울면처럼 걸쭉한 국물에 녹두와 좁쌀을 눌러 구운 전병(煎餠)을 잘게 잘라 넣어 먹는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누룽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청나라 초인 18세기 강희제, 혹은 건륭제 때 생겨난 음식이라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20세기 초인 1930년대 천진에서 거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결과인지 지금도 천진에는 유명한 꿔바차이 전문점이 있다.

나름 맛이 있어서겠지만 천진 사람들, 왜 한갓 녹두 좁쌀 누룽지 맛에 그토록 푹 빠졌던 것일까?

지금은 중국 음식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서깊은 중국 누룽지 요리가 또 있다.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다른 누룽지 요리와 달리 권위있는 옛날 요리책에도 보인다.

청나라의 고위 관리이자 미식가로 이름 높았던 원매가 쓴 『수원식단』에 “종이처럼 얇은 누룽지를 기름에 재어 구운 후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바삭바삭한 것이 맛이 있다. 금릉인(金陵人)이 제일 잘 만든다”고 나온다.

요리 이름이 흰구름 조각이라는 뜻의 백운편(白雲片)이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이름지어도 어쨌든 누룽지 튀김이다. 금릉은 지금의 강소성 남경의 옛 이름이고 수원식단은 강소성 상류층의 요리를 기록한 책이니 백운편이라는 누룽지 튀김 역시 당시 상당한 고급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설탕 뿌린 누룽지 간식을 청나라 내지 중국에서는 왜 수원식단에 수록했을 정도로 요란스럽게 대접했을까?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누룽지가 중국에서는 왜 요리로 발달했는지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밥과 중국 밥의 차이도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불을 때 밥을 짓던 시절, 한국 밥은 뜸을 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누룽지가 많이 나온다. 반면 중국 밥은 쌀을 찔 뿐 많은 경우 뜸 들이는 과정이 생략된다. 때문에 누룽지를 일부러 만들어야 했으니 이를 활용해 요리를 했다.

한국 밥이나 중국 밥, 얼핏 똑 같은 밥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꽤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서로 다른 누룽지 문화가 생겼다. 밥과 누룽지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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