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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일 폐지 주워 월16만원 번다…대한민국 서글픈 '노인 빈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건복지부가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와 지원대책을 공개한 2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를 모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와 지원대책을 공개한 2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를 모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연합뉴스

폐지를 줍는 노인이 4만2000명에 달한다는 정부 추계가 나왔다. 이들은 최저임금의 13%에 불과한 시간당 소득을 벌지만, 대다수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이런 노인을 전수조사해 월 최대 76만원을 벌 수 있는 노인 일자리 등으로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이런 내용의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와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폐지 줍는 노인은 한국사회의 노인빈곤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앙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21년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특히 폐지수집 노인은 우리나라 빈곤 노인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규모나 생활실태에 대해 파악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폐지 줍는 노인 4만2000명…27%가 “건강 안 좋아도 지속”

실태조사는 폐지수집 노인 1035명을 1대1 대면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이며, 남성 비율이 57.7%로 여성보다 많았다. 이들이 하루 5.4시간, 일주일에 6일씩 폐지수집 활동을 통해 버는 수입은 하루 평균 6225원, 월 15만9000원이었다. 시간당 수입으로 환산하면 1226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620원)의 13%에 불과했다. 기초연금 등 다른 소득을 합친 폐지수집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74만2000원으로, 전체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129만8000원)의 57% 수준이었다.

이들은 폐지수집을 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54.8%)을 가장 많이 꼽았고, ‘용돈이 필요해서’(29.3%)라는 응답이 그 다음이었다. 폐지수집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일을 구하기 어려워서’(38.9%)가 1위였고, 향후에도 폐지수집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88.8%나 됐다.

폐지수집 노인의 건강상태도 조사한 결과, 스스로 ‘건강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1.4%에 불과했다. 반면 ‘건강하지 않다’는 응답 비율은 32.7%로, 전체 노인 통계(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 ‘건강하지 않다’ 비율이 14.7%였던 것에 비해 높았다. 특히 ‘우울 증상’을 보유한 비율도 39.4%로 전체 노인 13.5%에 비해 2.9배에 달했다. 조사대상의 22%는 폐지수집 중 부상을 경험했고, 27.4%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폐지수집을 지속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복지부, 내년 전수조사해 노인일자리 연계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폐지 수집 노인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폐지 수집 노인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는 이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이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 일자리 및 보건복지 서비스를 연계·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1월부터 이들의 인적사항을 확보하는 전수조사부터 시행된다. 이번 실태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전국 4282개 고물상 명단을 지자체에 공유해 이곳에 폐지를 납품하는 노인을 파악, 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명단이 마련되면 폐지수집에 비해 나은 수입을 보장하는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도록 적극 권유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는 크게 공익활동형·사회서비스형 등으로 나뉘는데, 75세 이상 노인은 건강을 고려해 공익활동형에, 근로 능력이 높거나 더 많은 소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가 안내된다. 학교급식 지원봉사나 등굣길 교통 도우미 등의 공익형 일자리는 월 29만원, 교육시설 학습보조나 공공행정 업무지원 등의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는 월 76만원까지 활동비를 지급한다. 정부는 이런 노인일자리를 올해 대비 14만7000개 늘려 총 103만여개를 확보한 상태여서 연계 일자리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실태조사 대상의 47.3%만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해, 정부의 일자리 연계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폐지수집 활동과 유사하지만, 지자체가 활동비·장비 등을 지원하는 ‘자원 재활용 시장형 사업단’(가칭)으로 연계해 관리체계 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폐지수집 어르신들을 조사해보니 개인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 다른 일자리 참여를 거부하는 분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재활용 수익금을 배분받는 방식의 사업단 참여를 유도해 폐지수집 활동을 지속하되, 더 높은 소득 등을 보장하는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사진 보건복지부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사진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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