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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프레임의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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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완벽한 검찰공화국의 수립을 위한 포석이 놓였다. 이제 ‘당, 정, 청(=용)’이 모두 검찰 출신에 의하여 장악되었다. 2019년 검찰 쿠데타가 시작되었다고 문제 제기했을 때 과한 규정이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앞다투어 ‘검찰 쿠데타’란 말을 쓰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이 제 SNS에 올린 글이다.

총선을 앞두고 프레임의 전쟁이 시작됐나 보다. 민주당이 무기로 선택한 것은 ‘검찰 쿠데타’라는 프레임. 실제로 대통령도 검사 출신인데 당 대표(비대위원장)마저 검찰 출신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당·정·용의 여기저기에 검찰 출신이 즐비하니, 야당으로부터 ‘검찰 쿠데타’나 ‘검찰독재’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도 하다.

여당의 위기 맞아 한동훈 조기등판
야 ‘검찰 쿠데타’ 맞서 “운동권 청산”
새로운 유형의 보수 만들어야 승산
말싸움 아니라 실천 통해 입증해야

이 프레임은 문학적 성격을 띤다.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쿠데타’가 아니다. 검사 출신의 과다기용은 ‘편중 인사’일지는 몰라도 그걸 ‘독재’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쿠데타’는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수사학에 가깝다. ‘개새끼’라는 말을 생물학적 분류에 사용하지는 않지 않은가.

게다가 ‘검찰 쿠데타’의 주역이 누구던가?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민주당 정권이었고, 일개 검사장을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 역시 법사위 소속 민주당의 의원들이었다, 사실 민주당의 ‘처럼회’야말로 제2의 검찰 쿠데타를 획책하는 21세기 ‘하나회’라 불러 마땅하다.

검찰의 정치화를 막겠다며 시작한 검찰개혁. 그 명분을 자기들 비리와 범죄를 덮는 데에 악용하다 아예 검찰에 나라를 갖다 바쳤으면 자성이나 할 일. 그런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생쥐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다는데 영장류씩이나 돼서 오류로부터 배우지를 못하니, 종(種)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의 ‘검찰 쿠데타’ 프레임에 국민의힘은 ‘포스트 운동권’으로 맞선다. 조국 사태, 오거돈·박원순·안희정의 성추행, 은수미의 직권남용, 윤미향의 공금 횡령, 노웅래의 뇌물수수, 송영길·윤관석의 돈 봉투 살포, 이재명·김용·정진상·이화영의 대형 토착 비리. 그 잘난 민주투사들의 민낯을 보라.

그러니 이런 말을 듣는 것이다.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 년간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한동훈이 등판하자 민주당에선 ‘한나땡’이라며 짐짓 여유를 부린다. 그런데 적어도 말의 전쟁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승산이 없어 보인다. ‘암컷’, ‘놈’ 등 막말에 ‘대통령 탄핵’, ‘계엄선포’ 등 극언을 남발하는 처참한 언어능력으로 루쉰과 처칠을 인용하는 수준의 언어 감각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프레임의 대결을 말싸움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시대에는 참말쟁이든 거짓말쟁이든 모든 말쟁이에게 짜증이 나기 마련. ‘운동권 청산’이라는 말의 낙인효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프레임이 한갓 수사학이 아니라 현실의 기술임을 입증하는 실천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영화 한 편(‘서울의 봄’)에 잔뜩 고무된 것은,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아득한 과거에서, 영화라는 허구에서 찾는 신세가 됐음을 의미한다. ‘검찰 쿠데타’라는 생뚱맞은 표현도 현실에 영화를 투사함으로써 얻어진 것. 산업화의 뒤를 이어 민주화의 시대도 막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민주당에서는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를 내침으로써 회춘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다시 70대 80대, TK 정서에 갇힌 당은 위기에 빠졌고, 결국 적금 깨서 생활비 대듯이 대선 카드를 당겨쓰는 처지가 됐다. 경위야 어쨌든 국민의힘은 또 한 번 기회를 맞았다.

‘포스트 운동권’의 프레임은 상대를 멋지게 날려버리는 말솜씨가 아니라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보수를 기획하여 그로써 민주당을 정말 낡아 보이게 하는 실천을 통해 그 올바름이 입증된다. 하지만 어떻게? 힌트는 그가 장관 시절 가끔 보여주던 탈진영, 탈권위의 언행에서 찾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당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사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잖은가. 그저 당의 얼굴 하나만 바뀌었을 뿐.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한 나라 꼴은 한국 보수의 한계를 보여준다. 새 비대위원장에 대한 지지자들의 희망은 그 한계를 돌파할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에 대한 기대이리라.

길이 아닌 것은 ‘함께’ 가야 길이 된다. 과연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쪼록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한 그가 현실의 저항에 좌절하지 않기를, 한갓 분식(粉飾) 위원장, 즉 보수의 흉한 얼굴을 가리는 일회용 마스크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