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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부쩍 성장한 K방산, 평화 지키려면 수출도 가려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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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요즘 잘 나가는 K방산의 주요 무기 개발사를 취재하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연구진은 밤을 새우고 휴일을 마다하며 열중했다. 또 생산 공정에서 막히면 기술진이 어떻게든 뚫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K방산은 ‘극강의 가성비’와 ‘철저한 납기’라는 경쟁력을 앞세워 전 세계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K방산의 수출 실적은 130억~140억 달러 수준이다. 지난해(173억 달러)보다 살짝 떨어지지만, 성장세가 꺾인 건 아니다. 수출 대상국과 수출 무기는 2~3배 늘었기 때문에 내년엔 2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기는 한 번 도입하면 보통 30년을 쓴다. 그래서 부품을 대주고 고장을 수리하면서 30년간 이익을 계속 거두는 게 무기 수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위산업은 안보와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라고 치켜세우는 게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다.

내년 방산수출 200억 달러 전망
연구진·기술진 노고로 급성장
무기수출 제한 논의 시작해야
국제지위 높이며 안보에 도움

투자를 막았던 ‘강철비’ 집속탄

2006년 레바논에서 국제기구 폭발물 전문가가 이스라엘 전투기가 투하한 집속폭탄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2006년 레바논에서 국제기구 폭발물 전문가가 이스라엘 전투기가 투하한 집속폭탄을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여기서 K방산의 잔칫집 분위기에서 흥을 깰 수 있는 화두를 던져본다. 무기를 아무에게나 팔지 말고, 아무 무기나 수출하지 말자고 ‘감히’ 제안한다. 일각에서 ‘죽음의 상인’이라고 비아냥도 받는 무기 수출에서 윤리를 따지며 도덕을 들이대는 게 뚱딴지같은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판매 무기를 가려서 수출하는 게 결국은 한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2020년 ㈜한화는 일부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 코리아디펜스인더스트리(KDI)의 지분을 정리했다. 한화는 KDI를 자회사로 남겨두려고 했던 당초 계획을 포기했다. KDI는 한화가 집속탄 사업을 따로 떼 만든 법인이다.

집속탄(Cluster Munitions)은 확산탄 또는 분산탄이라고도 불리는 폭탄이다. 하나의 탄두에 수십~수백 개의 자탄이 들어있어 공중에서 이를 뿌린다. 이렇게 하면 넓은 지역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다. 걸프전 때 집속탄 공격을 받은 뒤 이라크군은 ‘강철비’라며 무서워했다.

그런데 불발한 집속탄이 문제였다. 불발탄을 만지다 터지는 사고가 잇따랐는데, 피해자의 98%가 민간인이며 그중 27%가 어린이였다. 그러자 2010년 유엔의 집속탄 금지 협약(CCM)이 나왔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111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다. 한국은 안보상 이유를 들어 가입하지 않았다.

유럽 국가들은 집속탄 사용·제조를 제재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비정부 기구인 팍스(PAX)는 집속탄 업체를 나열한 레드플래그(Red Flag) 리스트를 공개했다. 그러자 유럽계 연기금이나 금융회사들이 집속탄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였다. 한화는 유럽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되자 결국 KDI 매각을 결정했다.

지난 4월 한화의 방산 부문을 합병한 한화에에로스페이스 측은 폴란드 등으로 수출한 다연장 로켓인 천무는 KDI의 집속탄을 쏠 수 없도록 제한을 걸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KDI는 협력사라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KDI는 불발률을 1% 아래로 낮춘 집속탄을 개발했고, 내년부터 군에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발률 1%는 CCM을 비준하지 않은 미국이 자체적으로 세운 기준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영문의 앞글자들을 모은 ESG가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무기의 생산과 판매가 기업에 영향을 주는 세상으로 변했다. 게다가 무디스 등 신용평가회사는 각국의 ESG와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ESG의 종합적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마구잡이로 무기를 수출하다 보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깎아내릴 수 있게 됐다.

마구잡이 무기 수출 북한의 고립

무기 수출은 안보와 상관관계가 깊다. 세계 1위 방산 수출국인 미국은 자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무기를 판매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반대 경우도 있다.

북한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무기를 팔고 있다. 무장투쟁을 벌이거나 테러를 일삼는 조직도 북한의 고객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나 이스라엘에서 테러를 벌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도 거래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제사회에서 중국·러시아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북한 편을 들어주는 국가는 드물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받는 한국은 주로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에 기대고 있다. 근래 북한의 핵·미사일 억제는 군사적 수단에 동맹국·협력국과의 경제적 제재, 수출 통제, 외교 조처 등을 더하는 통합억제로 확대됐다. 통합억제는 다양한 수단으로 북한을 압박해 핵·미사일 사용을 주저하게 만들자는 개념이다. 그리고 인권을 탄압하거나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 동원되는 무기를 수출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통합억제를 훼손한다.

가치나 원칙에 따른 무기 수출 규제는 주요 국가들의 추세다. 미국은 무기 수출을 심사하는 데 인권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무기 수출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한국에도 방위사업법 시행령(58조 6항)과 전략물자 수출입고시(6조 1항) 등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국제평화’나 ‘평화적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무기 수출을 제한한 사례는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 따르는 법

영화 ‘스파이더맨’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K방산이 ‘민주주의의 무기고’라는 찬사를 앞으로도 들으려면 무기 수출의 원칙을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는 무기 수출길을 막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또한 글로벌 중추국가(GPS)로 도약하려는 한국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윤 대통령도 “일부 사람들이 방산과 무기산업을 전쟁산업이라고 보고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해 왔다”며 “방산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고 국제 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