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노송동 주민센터에 익명 기부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민센터에 익명으로 성금을 기부해 온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24년째다. 이번에 두고 간 8000만원을 포함해 누적 기부금은 9억원을 넘었다.
27일 전주시에 따르면 '얼굴 없는 천사'는 이날 오전 10시13분쯤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성금을 두고 사라졌다. 이날 노송동 주민센터에는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익명 전화가 걸려왔다. "이레교회 표지판 뒤에 (성금 상자를) 놓았으니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주민센터 측은 "중년 남성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올해 8000만원…누적 9억6479만원 기부
주민센터 직원들이 현장에 직접 가보니 전화 내용대로 A4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든 돼지 저금통,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엔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주민센터 측이 상자 속 성금 액수를 확인한 결과 8006만3980원이었다. 이로써 올해까지 24년간 총 기부액은 9억6479만7670원으로 늘었다.
이름과 직업은 물론 모든 게 베일에 싸인 '얼굴 없는 천사'는 해마다 12월 성탄절 전후로 상자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 성금과 편지를 담아 노송동 주민센터에 맡기고 사라지는 익명 기부자다. 전주시는 그간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 6578세대(지난해 12월 기준)에 현금이나 쌀·연탄·난방 주유권 등으로 지원했다.
4년 전 2인조 성금 훔쳐…징역형
4년 전에는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2인조 절도범이 '얼굴 없는 천사' 선행 소식을 알고 충남에서 전주까지 원정 절도에 나섰다. 절도범들은 2019년 12월 30일 오전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을 배회하다가 '얼굴 없는 천사'가 주민센터 뒤편 공원 내 나무 밑에 두고 간 성금 6016만3510원을 상자째 차에 싣고 달아났다.
이들은 당시 주민 제보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6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후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 성금 상자를 지키기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천사 선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본받아 익명으로 성금을 내는 시민도 꾸준히 생겨났다.
송해인 노송동장은 "'얼굴 없는 천사' 바람대로 나눔의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1회 HD현대아너상 대상 수상
한편 HD현대1%나눔재단은 지난 19일 제1회 HD현대아너상 대상 수상자로 전주 '얼굴 없는 천사'를 선정했다. HD현대아너상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 영웅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HD현대1%나눔재단이 올해 새롭게 제정한 상이다. HD현대1%나눔재단은 '얼굴 없는 천사' 뜻을 존중해 노송동 주민센터에 상금 2억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이 상금도 전액 소외 계층 지원 사업에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