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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초격차'가 흔들린다…'특허 톱10'에 한국은 삼성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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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중 반도체 전쟁. 블룸버그

미중 반도체 전쟁. 블룸버그

전 세계 반도체 기술 특허 중 한국에 출원된 특허의 비중이 지난해 지난 20년 사이 10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중앙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 등 세계 5대 특허청(IP5)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를 전수 분석한 결과다. 2003년만 해도 IP5 반도체 특허의 21.2%는 한국 특허청에 출원됐지만, 지난해엔 이 비중이 2.4%에 불과했다.

반면, 미·중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 비중은 2003년 45.6%에서 지난해 92.9%까지 치솟았다. 중국 비중이 14%→71.7%로 급증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핵심 반도체 기술이 미·중에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특허 등록처로서 한국의 매력은 떨어졌다는 의미다. 반도체 특허는 10년 뒤 기술 패권 경쟁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선행 지표로, IP5는 전 세계 특허출원 건수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선진 특허청이다.

20년 동안 반도체 특허 5배 늘린 중국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특허 건수에서도 확인됐다. 분석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중국은 IP5 중 반도체 특허 출원 건수(13만5428건) 1위로, 2위 미국(8만7573건)을 한참 앞질렀다. 중국의 특허청에 해당하는 국가지식산권국(CNIPA)에 출원된 반도체 기술 특허 건수 기준으로, 20년 전(2003년~2007년)보다 5배 가까이 늘어난 영향이다.

반면, 한국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는 5년간 1만8911건으로 3위에 그쳤으며, 4위 일본(1만8602건)에 소폭 앞선 수준이었다. 한국 특허청에 출원된 반도체 기술은 20년 전에 비해 약 45%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 수준이 발전할수록 신규 특허 출원 건수가 늘어나긴 쉽지 않다”면서도 “대부분의 기업이나 연구기관들이 기술 선점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에만 특허를 등록하는 걸 감안하면 미중의 반도체 기술 경쟁이 특허 출원 규모에서도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기업 CEO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손에 들고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왼쪽 사진). 시진핑 국가 주석이 2018년 4월 중국 우한의 반도체 기업을 찾아 관계자들과 함께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EPA·신화=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기업 CEO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손에 들고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왼쪽 사진). 시진핑 국가 주석이 2018년 4월 중국 우한의 반도체 기업을 찾아 관계자들과 함께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EPA·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물론 구형·범용 반도체와 최첨단 반도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술 특허를 쏟아냈다. 다만 전체 특허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피인용지수(CPP)는 2.89로, 미국(6.96)이나 한국(5.15)에 비해 아직은 낮다. 피인용지수는 당해 특허가 후속 특허에 인용된 횟수를 반영한 지수로, 숫자가 높을수록 특허의 질도 높은 편이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은 첨단 반도체 등 기술 특허의 질에서, 중국은 반도체 특허의 양에서 경쟁국가를 압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곽현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는 “국가별 특허출원 건수는 각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시장 확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 지표”라면서 “아직은 국내 특허의 질적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중국이 양적 성장을 토대로 질적 성장을 꾀하고 있는 만큼 안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특허에 약한 韓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우리 특허청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 중 시스템 반도체 비중이 경쟁국에 비해 낮은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에 출원된 반도체 관련 특허건수를 분야별로 분류하면 메모리 반도체는 2만5159건, 시스템 반도체는 3만3291건으로 시스템 반도체 관련 특허 비중이 57%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65.3%)·중국(68.5%)·일본(70.9%)·유럽연합(78.6%) 등은 시스템 반도체 특허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향후 인공지능(AI) 시장에 대비해 시스템 반도체 기술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국내 특허청에 출원된 전체 시스템 반도체 관련 특허건수는 미국의 29.9%, 중국의 25.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정석 대한상의 산업정책팀 선임연구원은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중국의 위기감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부추기고 있다”라며 “국내 반도체 업계 경쟁력 유지를 위해 보조금 지원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허 多출원 톱10에 삼성전자뿐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특허 출원자를 기준으로 살펴보니, 최근 5년 동안 IP5에 반도체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곳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였다. TSMC는 2021년 기준 주요 3개국(한국·미국·중국) 특허청에 반도체 기술을 가장 많이 특허출원한 상위 5개 출원인 리스트에 모두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TSMC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 특허청에 출원된 반도체 특허기술의 절반 이상이 삼성전자로부터 나왔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중국 기업들의 선전도 확인됐다. 2003년 IP5 반도체 특허 출원자 상위 10위 중 중국 기업·기관은 중국과학원(9위)뿐이었지만 지난해는 바이두(2위)·핑안(4위)·텐센트(6위)·화웨이(9위)가 합류해 특허 출원 톱10 중 절반을 중국이 차지했다.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3위) 1곳뿐이었다.

*분석 대상 : 2003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IP5에 출원한 모든 반도체 기술 특허. PATSTAT·한국특허전략개발원의 반도체 기술 분류체계 활용.
*특허 출원 후 공개까지 18개월의 시차가 있으므로 2021년 하반기 이후 특허 건수와 순위 등은 모두 공개된 특허에 한해 분석 대상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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